“쟤는 밥을 진짜 자세하게 먹어.” 2007년 입대한 내가 훈련소 동기에게 들은 말이다. 아마 이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나의 먹는 모습이 남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게. 첫 직장에서 취재부 캡 선배는 이렇게 표현했다. “얘는 밥 먹는 거 보면 진짜 신기해. 부대찌개를 먹으면 소시지 한 조각, 스팸 한 조각, 두부 한 조각, 야채 종류별로 하나씩 숟가락에 얹어 먹어.”
결혼을 앞두고 빡시게 다이어트를 했던 우리 팀 ◇◇주임이 그랬다. 저염식을 먹다가일반식을 먹으면 온갖 맛이 다 느껴진다고. 그렇다면 나의 미식가적 입맛을 만든 범인은 어머니다. 위암으로 위를 절제한 이후 최대한 나트륨을 배제해 온 어머니의 집밥 기조와 기본적으로 타고난 예민한 성격이 결합돼 지금의 내 민감한 혀를 완성했을 거란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혀도 성격도 민감한 사람... 내 얘기지만 듣기만 해도 피곤한 사람이다.
10월쯤이었나?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웹 디자이너가 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니 “OO대리님이 사향노루님 밥 먹는 게 진짜 신기하다고 한 번 봐보라고 했어요. 먹기 전에 요리조리 관찰하고, 냄새 한 번 맡고, 국물 한 번 살짝 떠먹고,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음미하다 삼킨다고요.ㅎㅎ”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걸 그렇게 자세히 캐치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어쩐지 나도 몰랐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괜히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태국 쌀국수와 베트남 쌀국수의 차이를 느끼며 내 취향은 베트남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짤이 있다. 누군가가 “밥은 꼭 까탈스러운 사람이랑 먹어라”라고 글을 올렸고, “이 새끼.. 아주 근사한 식사를 했나 보군”이라고 댓글이 달렸다. 미식가의 피곤한 삶은 여기서 시작한다. 입맛이 까다로운 만큼 전체적인 성격도 까탈스럽고 예민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또 머쓱하긴 한데 내가 사회에서 계속 구르면서 덜 까탈스럽고 덜 예민해져도 입맛이 무뎌지진 않을 걸 알다 보니 미래에 대한 억울함이 몰려온다. 억울함을 가불 하는 또라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나는 예전보다 덜 까탈스럽고 덜 예민해졌지만 입맛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NIKON D5600 + SIGMA 24-70mm F2.8 DG OS HSM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피곤한 건 미식가 본인이다. 나는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저녁 식사 불모지에서 보냈다. 일반 사람들은 야근할 때 적당히 저녁 먹고 다시 일한다. 일을 하기 위해 먹는 것일 뿐이니까. 하지만 미식가는 점심도 적당히 먹었는데 저녁도 되는대로 먹기가 쉽지 않다. 아침은 보통 빵이나 그래놀라바 같은 생존형 식량으로 때운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루에 한 끼도 흡족한 식사를 못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 빵과 그래놀라 맛은 안 따지나? 또 엄청 따진다.)
그렇게 되면 결국 복잡한 경우의 수가 생긴다. 퇴근이 늦어지더라도 시간을 더 써서 맛있는 곳을 찾아갈 것이냐, 저녁 식대로는 편의점에서 저장 가능한 식품을 사고 빠른 업무 마감 후 맛있는 저녁을 찾아 나설 것이냐, 없는 근처 식당 중 그나마 나은 곳이나 집으로 갈 것이냐… 더 힘든 건 조금이라도 맛있는 걸 먹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이 고민이 빨리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 결국 이래나 저래나 퇴근은 일찍 못한다. 이놈의 예민한 혀….
집에서는 또 얼마나 피곤한가. 이 쓸데없이 예민한 혀는 한국 쌀로 볶음밥을 했을 때의 그 끈적한 느낌이 볶음밥스럽지 못하다며 절대 견디지 못해 자취방에서도 한국 쌀과 동남아 쌀 두 종류를 상시 보유하게 만든다. 다듬어서 냉동해놓은 파와 냉동하지 않은 파의 맛을 귀신같이 알고 반응해 적은 양의 파를 더 비싸게 더 자주 사게 만든다. 오래 냉동 보관해 수분이 날아간 고기로 한 요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하게 퍽퍽한 느낌을 너무 잘 느껴 좀 오래 보관했지만 먹는데 지장 없는 냉동 고기도 미루다 결국 버리게 만든다. 내 예민함은 99%이 확률로 어머니로부터 왔다고 보는데, 그런 어머니조차 “고기 냉동할 때 비닐팩으로만 싸서 얼리면 나중에 수분 날아가서 맛없다. 조금이라도 덜 날아가게 지퍼락에 한 번 더 넣어야 한다”는 내 지론에 투머치 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그렇게까지...'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눈빛이란....
한 번 미식가라고 주위의 인식이 형성되면 그때부턴 또 부담이다. 함부로 새로운 걸 먹자고 하지 못한다. 내가 추천하면 다 맛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엄청 기대한다.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식당이라고 해놓고도 혹시나 실망하면 어쩌나, 나만 맛있었던 거면 어쩌나...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칠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단 그런 반응을 겪은 뒤 내 혀를 의심하게 되는 게 더 걱정이다. 이 무슨 세상 쓸 데 없는 걱정인가.
이런 수많은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미식가의 삶은 증폭된다. 느껴지니까 궁금한 게 많아진다. 온갖 음식 다큐를 찾아보며 아는 게 많아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또 아니까 맛없음과 맛있음의 경계에 더 민감해진다. 더 민감해지니까 또 더 궁금한 게 많아지고… 공부를 이렇게 하고 일을 이렇게 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잘하는 건 공부랑 일이 아니라서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나 보다. 앞으로도 계속 피곤한 미식가의 삶을 살 게 뻔하다는 뜻이다. 맛을 알아서 기쁘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은 먹는 시간보다 안 먹는 시간이 더 길다. 알아서 이득인 시간보다 몰라도 아무 문제없는 시간이 더 길다는 듯이다. 미식가를 찬양하지 말고 막입을 찬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