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때 생각하면..."

by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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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5부제는 들어봤지만 마스크 5부제는 처음이었다. 집에 중형이 몇 개 있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말하거나 웃을 때마다 마스크가 딸려 올라가서(내 얼굴이 작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신분증을 보여주니 금방 마스크 2개를 주셨다. 마스크 5부제, 오늘은 출생연도 끝자리가 1과 6인 사람이 받을 수 있는데, 나는 6 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여러 가지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특히 자녀 문제가 그랬다. 국가적으로 아이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분위기였고,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자녀가 없는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수당을 위해 나를 1년 뒤에 출생신고했다. 먹고사는 것이 힘드셨다는 이야기에 다른 사연이 필요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이었으니,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1년 뒤에 나를 세상에 신고한 것으로 인해 어려운 점이 별로 없었다.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내가 출생신고하고 몇 달 뒤에 남동생이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이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할까. 하여간 나는 적당히 누나 노릇하면서 그럭저럭 잘 자랐다. 하지만 부모님은 가끔씩 얘기하시곤 한다.

"수당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너를 늦게 올렸다가 뒤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마 나의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태어난 해의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몇 달 차이 나지 않는 남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할 상황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미래의 큰 그림까지 치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이 많이 타셨으리라.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1년 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엄마는 나를 치과며, 병원이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남동생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내가 주민등록상의 출생일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을 확인해 줄 서류를 찾아 방방곡곡 뛰어다니셨던 모양이다. 내가 제때에 입학하고 졸업한 것을 보면. 그 이후로는 출생연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출생연도보다 내가 더 오래전에 태어났다는 것을.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을 몇십 번, 몇백 번 설명해야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5부제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실마리가 될 줄은 몰랐다. 가족 중에 가장 먼저 마스크를 받으러 가는 영광 아닌 영광까지. 내일은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엄마, 마스크 5부제로 제일 먼저 마스크 받으러 갔었어"라고. 옛날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나를 데려갔던 치과 이야기가 다시 불려 나오지 싶다. "내가 그때 생각하면..."

며칠 전 뉴스를 보니 마스크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잘 말려서 며칠 더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웃을 때 마스크가 조금 딸려올라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것 같으니, 내일은 햇볕에 잘 말려봐야겠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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