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업무 진행을 위해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고 파주로 올라가는 길, 신간도서와 읽을 책 한 권, 그리고 이어폰을 챙겼다. 습관처럼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언제나 책을 챙기게 되는데, 지난주부터는 '사주명리학'에 관심이 생겨 사주명리학 책을 한 권 넣었다. 뜬금없이 사주명리학?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호기심을 잠재울 수 없어서 틈틈이 읽어보고 있다.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았고, 유튜브 동영상 강의를 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회적 거리두기 2m를 생각하며 자리를 배정했는지, 서울로 가는 사람이 없는지, 서울로 향하는 KTX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교보문고 본사가 있는 파주 출판 단지. 근래에는 자동차로 다녀오기는 했지만, 몇 번 다녀온 곳이라 정확하게 길을 알지 못해도 검색해서 가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서울역에 도착하고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 입구까지는 문제없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조금 문제가 생겼다. 홍대 입구 몇 번 출구로 나가서 2200번을 타면 된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여기저기를 검색해도 "홍대 입구>2200번" 이렇게만 되어 있었다. 이런 난감한 일이.
방법이 없었다. 조금 전에 문을 오픈했는지, 간단식으로 아침을 드시고 계시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파주로 가려고 하는데요, 2200번 버스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세요?"
"파주? 그러면 이 앞에 합정역으로 가면 되는데..."
"아.. 저는 2200번 버스를 타야 해서요..."
"미안해요. 저도 버스는 잘 모르는데..."
"아, 네... 감사합니다"
식사를 하던 손을 멈추고 열심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출입구가 9번까지 있는 데다가 공항철도와 지하철이 만나는 곳이다 보니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어찌나 바쁘게 걸어가는지, 말을 건네볼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나 무례하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러다가 목에 신분증 같은 것을 걸고 지하철 타는 곳 근처에 계시는 분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죄송한데요.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안경을 밀어올리면서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는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키가 컸다.
"제가 파주로 가야 하는데, 2200번 버스를 타야 되거든요. 혹시 그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파주?.. 합정역에 가면 나을 텐데.. 저쪽 방향으로 쭉 가면 되는데"
"네... 그런데 제가 검색한 바로는 홍대 입구에서 2200번 버스를 바로 타면 된다고 해서요... 여기..."
핸드폰을 꺼내 검색한 것을 보여주었더니, 다시 내게 물었다.
"2200번 버스를 타야 한다는 거죠. 잠시만요. 이쪽으로 오세요"
"네..."
아저씨는 자신의 출입증으로 지하철 입구를 열면서 내게 말했다.
"사무실에서는 알 수 있을 거예요"
내 마음이 아저씨에게 전해졌는지 아저씨는 급하게 입구를 빠져나갔고, 문제는 빠르게 닫히는 문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는 반대편에 서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는 다시 입구를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이끌면서 이야기했다.
"가만, 잠시만... 이건 여기 있는 사람도 모를 수 있겠네요... 그것보다는 ... "
2200번 버스를 타야 하는 나를 대신해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 2200번 버스 노선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이곳을 지나가는 것 맞네요... 그런데 그 위치가 몇 번 출구인지는 안 나와있네요. 잠시만요..."
위로 아래로 열심히 움직이는데, 그때 버스 회사의 전화번호가 보였다.
"아저씨, 제가 여기로 전화를 해볼게요"
휴대폰 건너편에서 버스 회사 직원의 친절의 안내가 들려왔다.
"1번 출구로 나가셔서, 합정역방향으로 조금만 내려오시면 작은 버스승강장이 보이는데, 거기에서 2200번을 타시면 됩니다.... "
그 후 전화를 끊고, 아저씨에게 1번 출구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받은 후 그 자리를 떠났다. 1번 출구가 여기서 많이 멀다고 얘기하면서 잘 보고 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바쁜 시간 나의 도움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턴데, 선량하고 착한 모습으로 아저씨는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1번 출구로 걸음을 옮기는 내내 머릿속에서 "환대"라는 단어가 떠나지를 않았다. 무언가 후하게 대접받은 느낌이었다. 인생에게, 사람에게.
낯선 길에서 누군가를 내가 신뢰했기에 그에 보상이라도 하듯 환대가 이뤄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환대를 경험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신뢰와 환대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움받은 것에 대해 나중에 갚겠다고 말을 하자 상대방이 자신에게 갚을 필요가 없다며 대신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2200번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아저씨, 저도 다음에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아저씨에게서 받은 환대를 갚을 수 있도록 할게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