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말했던 시절들이 있었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속에서 세월을 원망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라고 했던 일, '절대로'라고 다짐했던 일들이 하나, 둘 옅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어서 그렇다고 하고, 또 누구는 연륜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성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거대한 산이자, 높은 벽이었으며, 동시에 든든한 바람막이였다.
또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일 년에 몇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요즘, 내려앉은 어깨가 신경 쓰이고, 머리가 하얘진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서서히 '그럴 수도 있는' 것들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하면서 생(生)의 끝을 생각해보게 된다.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있던 숨어있는 한 사람, 삶의 길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아련해온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익숙한 것들, 혹은 익숙한 대상과 멀어지면서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면서 익숙했던 것들, 익숙했던 사람들이 새롭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상이 부모님, 정확하게 '아버지'였다.
이러한 신비로운 경험은 내 삶의 다른 많은 것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자신만만했고, 장담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만들어주었고, 세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일부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일방적인 혹은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 '삶'이라는 것, 순식간에 '어, 알겠어. 그러니까'라고 해석하는 단정적인 말투가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경험치로, 자신의 그릇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 같다. 삶의 유한함을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긴 여정. 동시에 자신의 그릇이 어느 정도이며, 그릇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 같다.
물론 내가 '나이 듦'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이다.
오늘도 그런 날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삶의 유한함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해를 넓히는 과정에 멈춤이 없기를 희망해본다.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