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배움과 학습을 얘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배움이나 학습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 말이다.
드디어 어제 큰 아이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넌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니?"
"넌 얼마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니?"
"넌 얼마나 놀고 싶은 것을 잘 참고 공부했니?"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아이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며칠을 보냈다.
'오늘부터 기말고사 공부 시작할 거야'라고 말한 기간을 포함하면 대략 3주일 정도 되는 것 같다.
가끔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른 일로 함께 있어주지 못했지만 하여간 기말고사가 끝났다.
공부에 대해 걱정하는 아이에게 늘 했던 말이 있다.
"계획을 세웠니?"
"계획을 세우고 달성해야 성과를 낼 수 있어"
어떤 식으로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자주 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며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성과라는 말 안 하면 안 돼?"
그날 아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냥 싫어서"
"엄마가 무슨 의미로 성과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점수 잘 받아야 된다고..."
"아닌데... 그거 아닌데..."
"그럼?"
"그게 아니고 네가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는 것을 성과라고 한 건데..."
"..."
"계획이 없으면 뭘 얼마나 했는지,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작게라도 계획을 세워서 그걸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어"
"음..."
"엄마가 말하는 성과는 타인에게 보이는 것 말고, 스스로 계획하고 이루어내었다는 경험을 가지라는 건데..."
어렵게 느껴졌는지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아이는 물 한 컵을 가지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기말고사가 아이의 모든 가능성을 판단하고 인생을 결정하는 지표는 결코 아니다.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불행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태도를 배우는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학습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점수가 아니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학습을 즐기는, 적어도 즐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떤 꽃을 피울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알려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훗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내가 알게 된 것을 아이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과 그 안에서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이번 생이 충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높은 성적이나 점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인생의 중요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