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오늘은 딱 하루니까

by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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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한 이런 말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뭐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잖아"


어떤 특별한, 혹은 근사한 삶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내 삶을, 누군가를 그저 그런 것으로 몰아가는 표현이 나는 별로다. 이유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요즘 나는 '작가님'이라는 호칭 덕분에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말과 함께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세상 공평한 이유가 되어 나의 부족함을 덮어주고 있다.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은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좋은 이미지로 보여지고 있으니 이런 것을 두고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의 이런 호의적인 평가와 달리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전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무거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작가님'으로 불리기 위해 달려오지 않았다.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상황은 순전히 자율성에 근거한 의지의 결과일 뿐이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는 공(空)의 영역에서 출발한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 일련의 성과에 대해 인과관계를 물어오면 대답하기 참 어렵다. 멋지게 설명할만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주 심플한 스토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고 있었고, 힘들어도 계속 뭔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어요. 그 사실을 발견했어요"

"조금이라도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틈틈이 글을 썼어요. 1년, 5년, 10년... 그 과정에서 책도 몇 권 만들어냈어요. 그게 벌써 10권이네요"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책임감은 갈수록 깊어졌고, 책임감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내 삶 전체를 통틀어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들.

"과연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지금 나에게 의미 있는 문장은 어디에서 태어났지?"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는 문장이 무엇일까?"

"나는 바라보는 곳은 어디인가?"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만든다고 했던가. 질문은 조금 다양한 각도에서 날아왔고, 탁구공을 받아치는 것처럼 숨 가쁘게 받아쳤다.


책임감에서 시작된 질문은 내 삶을 점검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버린 것이 무엇인지,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기다움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의견은 호기심을 만들어냈고 호기심은 세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호기심은 '작가님'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사명감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뭐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잖아"

나는 오늘을 '그렇고 그런 날'중의 하루로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거기서 거기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찾아들면 나를 지탱하고 있는 문장이 툭 튀어나와 반론을 제시한다. 내 생애의 가장 젊은 날이자, 가장 마지막 날을 그렇게 평가절하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군분투하는 노력이든, 책임감으로 힘겨워하든, 사명감으로 마무리하든, 어떤 식으로든 나의 오늘이 의미를 가지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나의 가족들, 이웃들, 친구들도 그러하기를 원한다. 누구에게나 오늘은 딱 하루니까.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 햇살 한줌 뿌려주고 싶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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