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간에 산토리니 그림 밑에 날짜를 새겨두었다. 2021년 2월 in 산토리니.
간절하게 생각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실험해볼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적어놓았다.
떠날 날을 그려보면서, 아주 자세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은 채,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여행을 통해 어떤 것을 채워오겠다 와 같은 거대한 욕심은 없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사소하게 지나쳤던 것에게서 청량감이 느껴진다거나 메말라있던 어떤 것에게 수분이 보충되는 느낌, 많은 것들이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희망 같은 것, 여행을 통해서 내가 얻고 싶은 것들은 실은 이런 자잘한 것들이다.
그림을 채우기 위해 붓을 들고 잠시 망설이는 순간, 어떤 오기 같은 것이 발동하며 내 마음으로 채우게 된다.
'어차피, 내가 그리는 그림인데...'라는 마음으로.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한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고, 확률을 고민하고, 가능성을 점쳐본다.
그때 내부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만드는 그림인데...'
약간의 무모한 느낌으로 덤벼든 용기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크게 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배운 느낌이나 경험은 양식으로 내게 축적이 되어 다음날 다시 하얀 백지를 만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실수한 부분을 이렇게 하면 된다고 배우는 과정은 스스로를 실패자로 몰아가기보다는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내 안을 단단하게 채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나 할까. 적당한 실수와 적당히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을 완성시켜본 경험, 그런 경험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떤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저항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생을 도전의 연속이라고 했을 때, 곧 저항의 연속이라고 말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계속 시도한다는 것에 잠재적 가능성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무엇을 하고 싶다, 혹은 어떤 것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응원한다.
그 마음이 자신의 그림을 채워나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어제 어떤 그림을 그렸는가?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한 의미를 바탕으로 다시 시도하는 반복 속에서 혼자 다짐한다.
"내 그림의 주인공은 나야!"
"어차피 내가 그리는 그림인데..."
-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