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그래도 오늘 알게 된 게 어디야?"
둘째가 바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라고 해도 세심하고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편이라 온라인 개학이라고 해도 관여하지 않았다. 3학년인가, 4학년 정도까지 알림장을 함께 살펴보고는 5학년부터는 스스로 알림장을 확인하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갔다.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준이었다. 그래서일까. 온라인 개학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아이여서 아침마다 컴퓨터를 켜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난 후, 1,2시간 정도 독서를 하는 것으로 초등학생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고 둘 다 나름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가깝게 지내는 동생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배움 노트.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공책에 정리하는 것까지가 온라인 수업 과제라는 것이다.
4월 17일에 개학한 후 지금까지 배움 노트, 공책 정리에 대해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나는 황당했다.
"진도에 맞춰 영상만 보면 되는 거 아니고?"
"그럴걸요. 학교에서 그렇게 공지된 걸로 아는데..."
"초등학교 6학년도 공책에 정리하는 숙제 있었을까?"
"언니, 아마 있을걸요. 알림장 확인해보세요"
"알림장?"
"언니, 알림장 안 봤죠?"
"응"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얘기를 나누다가 둘째에게 물었다.
"온라인 수업 듣고 공책 정리하라고 했다는데, 너희도 그런 거 있었어?"
"정리? 그런 거 하라고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헉. 이때의 당황스러움이란.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다시 물었다.
"본 적은 있단 말이지?"
"응...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적잖이 놀란 것 같으면서도 엄마에게 눈치가 보이는지 얼버무리는 모습에 더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주말에 알림장이랑 숙제 확인해보도록 하자. 알았지?"
온라인 개학하고도 한참이 지난 일요일, 아이와 함께 e 스터디에서 온라인 수업 내용과 과제를 점검했다.
아뿔싸. 과제 제출방에 올라온 친구들의 숙제.
"아들~~~!!"
나도 모르게 고음이 나왔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아들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나보다 더 당황한 표정의 아이를 크게 혼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아이도 현재 어떤 상황인지 분위기 파악은 한 것 같았다.
"과제까지 해야 출석 인정이 된다고 하잖아..."
"응..."
"좀 꼼꼼하게 살폈어야지..."
"응..."
"그래도 지금 알게 된 게 어디야? 내일 학교 가는 날이 아닌 게 어디야?..."
"응..."
"엄마... 하루에 5일씩, 아니면 10일씩 해볼까? 지금부터 해볼게"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는지, 누나에게 노트를 빌려 무언가를 적어가는 모습을 뒤로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러게... 아침마다 너무 빨리 끝난다 싶더라...'
'큰 애처럼 제출하는 게 없어서 편하게 수업한다 싶더라...'
'내가 너무 무심했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둘째가 씩씩거리면서 내 곁에 왔다.
"엄마, 이렇게 할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응?..."
"아니, 표지 설명하기, 차례 쓰기, 중심 내용 쓰기, 글 구조 쓰기. 이거 비슷한 내용 이렇게 저렇게 조금만 바꾸면 되잖아. 크게 다를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나누어서 써야 하는 거야?"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너도 답답하겠지... 갑자기 쏟아져서 화가 나겠지..."
한편으로는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수도 있는데... 조금씩 차이가 있어. 표지 설명하기는... 차례 쓰기는.... 차이가 뭔지 조금 알겠어?"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에 적당히 마음이 잦아들었는지, 얘기를 다 듣고 아이는 제 방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왜?"
"엄마, 내가 지금 포스터 그리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아직..."
둘째가 바빠졌다. 놓친 것이 있다는 것과 해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에 당분간 상당히 바쁠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바빠질 것 같다. 아이의 하소연을 들어주기 위해서, 조급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급하게 진행될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지금 알게 된 게 어디야? 학교 가기 전날 알았으면 어떻게 할 거야?'
by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