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속으로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했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간혹 미안한 마음으로 속죄하듯 써 내려간 적도 있었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서툰 엄마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미안함, 내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대한 아쉬움을 함께 달랠 수 있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엄마가 되어 알게 되면서, 한 사람이 여러 층위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어릴 때 큰 아이가 몇 달 같은 몇 년을 깁스와 보조기로 생활했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는 날도 많았지만, 포대기에 업고 다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포대기 밑으로 나온, 깁스를 한 발가락이 신경 쓰였던 사람은 엄마인 나뿐이었다. 어쩌면 더 불편했을, 더 힘들었을 아이는 그저 또래보다 엄마를 조금 더 의지했을 뿐, 한순간도 순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깁스 생활에도, 보조기 생활에도 엄마가 보여주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완벽하게 적응해 주었다. 처음 맞이해보는 엄마라는 이름에 나만 볼록렌즈로, 오목렌즈로 세상을 평가하면서 마음속으로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마법의 약이 필요했다. 괜찮을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내일을 믿을 수 있는 용기의 마법 약이 필요했다.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하얀 종이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주문서를 작성했다. 불안과 기대가 제멋대로 부풀려지고 그림자가 제 마음대로 길이를 조절하며 드러눕는 광경이 벌어졌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방법을 몰랐기에 그저 내버려 두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래서 어디에도 드러내지 못했던 속마음이 마구 쏟아지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지만 마냥 싫은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우울감과 슬픔을 옮기는 일은 과감해졌고, 뭔가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질 때까지 끌어모아 토해내는 과정이 나를 살린다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내가 선택한 하얀 종이는 나를 선택해 주었다. 모든 순간, 모든 감정에 대해 판단 없이 받아주었다. 큰 호흡이 나올 때까지, 큰 울음이 나올 때까지, 가슴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모든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면서 하얀 종이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엄마가 된 나에게,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절망감에 빠졌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속상한 마음에 가슴이 무너져내려앉은 날에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쓰임을 확인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대해서도 하얀 종이의 위로는 계속되었다.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라고 썼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바람 좋은 날 빨래가 마른 것처럼 종이 위의 글자는 "괜찮아. 괜찮아"라고 까슬하게 잘 말려져 내게로 되돌아왔다.
나는 그렇게 글 쓰는 엄마가 되었다. 기뻐서 썼고, 슬퍼서 썼고, 감사해서 썼고, 속상해서 썼다. 희한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엄마라는 이름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의 회복에도 기여하는 느낌이었다. 궁극에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지기까지 했다. 십 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그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일을 믿을 수 있는 용기의 약을 찾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게 필요한 것은 내일이 아닌 오늘이다. 오늘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와 함께 그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 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