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과연 우리는 우주에 대해, 자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큰 아이 학교 과제에 "부분일식 관찰"이 있었다. 하지에 일어나는 부분일식을 관찰하고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것이 과제였다. 3시 40분부터 6시 정도까지 관측할 수 있다는 얘기에 아이와 함께 공원에 나갔다. 남편과 둘째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경주로 내려간 터라,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 내가 보조 스태프가 되어 따라나서게 되었다. 오전에 바깥 일을 볼 동안, 아이는 아빠가 DSLR로 찍는 모습을 봤다고 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사용하지 않는 선글라스 두 개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저 나는 몸만 따라나서면 되는 상황이었다. 부분일식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크게 관심도 없는 분야였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따라나섰다.
부분일식 촬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DSLR이 쉽지 않았다. 모드를 M, AV 등으로 여러 차례 바꿔보고, 1/8000, 1/4000 초로 바꿔보기도 하고, 조리개도 조절해보았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지 촬영이 쉽지 않았다. 이동중인 남편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눈으로 보이는 부분일식을 화면으로 담는 것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태양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고, 달은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달과 태양의 만남은 예술이었지만, 예술을 승화시켜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카메라를 잘 다루지 못한 기술적 한계로 결국 실패로 끝났다.
"아... 약 올라...."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아 약이 오른 것은 큰 아이만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도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 진짜..."
마지막 희망은 남편이 전해주고 간 선글라스 알 두 개.
DSLR을 내려놓고 선글라스 두 개를 포개어 태양을 겨누었다. 지구가 돌고, 달이 태양을 지나고 있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떠나는 달을 붙잡을 능력이 없으니 떠나기 전까지 무작정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땀이 감고 있는 왼쪽 눈 위로 떨어졌다. 태양을 피해 가끔 다른 곳으로 세상을 돌리면 온통 초록빛이었고, 두 개로 겹쳐 보이기 일쑤였다. 조금 진정시킨 다음 성공을 다짐하듯 한 쪽 눈을 지그시 감고는 '옛말에 진심은 통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노력하는데, 어떻게 한 장은 건지겠지'라는 마음으로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숙제로 시작한 부분일식 관찰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서 오기가 생겨났다.
"니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부분일식에 대한 사명감을 지닌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을 어떻게든 핸드폰으로 옮기고 싶었다. 탐구심은 아니었던 것 같고,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하는 사피엔스적인 욕망이 컸던 것 같다. 조금 더 거창하게 표현하면 달과 태양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지구인이 되고 싶었다고 할까. 하여간 달에 가 본 적도 없고, 태양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과는? 애초에 원했던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했다. 반사된 것 같은 느낌의 사진 몇 장이 전부이다. 2시간 동안 땡볕에 서 있었던 결과치고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지금까지 '달이 태양을 지나면서 태양을 일부 가리는 현상을 부분일식이라고 한다'라는 정의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물론 선글라스 알 두 개와 반사된 듯한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르기는 하겠지만. 과학은 언제나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었다. 비록 더운 날씩에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 친숙해진 느낌이다. '언제나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생각보다 가까운 당신' 정도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잠깐이지만 부분일식을 찍는 동안 다른 세상에 있었던 느낌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문풍지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본 기분이다. 지금껏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왔지만, 문득 우주의 주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겸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