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늦은 퇴근이었다. 늦은 저녁이었다. 배가 고팠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기억한다면 누군가를 물리쳤겠지만, 뇌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간단하게 한잔 마시는 건 괜찮다는 방향으로 결론났다. 남편도 저녁을 먹기 전이라는 얘기에 서로의 배고픔과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맥주와 오징어땅콩,포스틱을 준비했다. 보통 수입맥주를 사러 가면 4캔에 만 원인데, 이번에 장을 보면서 행사가로 4캔에 8,800원이라 조금 넉넉하게 준비해둔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냉장고에 시원한 맥주 있잖아!"
"좋지"
솔직히 남편과 나는 공범자이다. 맥주를 살 때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이야기한다.
"이 정도면 땡잡은 가격인데..."
"진짜. ... 좀 넉넉하게 사 놓을까?"
"좋지! 그러면 밖에 사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땡잡은 거지!"
하지만 우리의 알뜰함은 수시로 길을 잃었다. 본래의 목적은 한 캔씩 먹는다고 가정해 며칠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예상으로 구입하는데, 일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늘 착오가 생겼다. 며칠 가지 않으면 조금씩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예상했던 날짜보다 훨씬 일찍 냉장고가 훤해지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졌다. 이유는 명백했다. 알뜰함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한 캔으로 끝난 날보다 두 캔으로 끝나는 날이 훨씬 많았다. '오늘은 막걸리 한 잔'이라던 남편은 입가심으로 맥주를 넘봤고,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에서 한 잔을 더 마시는 날이 많았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나 역시 맥주 한 캔이라고 시작했는데 결국 카프리 한 병을 더 마시고 나서 자리를 정리했다.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는 술은 서사적으로 접근했다. 원인과 결과에 의해 도착하는 지점이 술자리였다. 술을 마셔야만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시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신체적 제약도 있지만, 접근 방식이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낀다. 일단 서사성을 잃었다. 아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어떤 원인의 분석보다는 상황 파악이나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눈앞에 해결해야 할 문제, 혹은 예측되는 것들에 대해 서로에게 의견을 구하는 편이다. 둘 다 각자의 일에 대해 조언을 구할 상대가 필요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의견이 달라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기도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다투는 줄 알고 걱정을 하는 눈치였는데, 요즘은 별스럽지 않게 바라보는 것 같다. 언젠가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엄마하고 아빠가 보드에 뭘 적어가면서 언성 높이는 게 걱정이 많이 됐는데, 요즘은 그러려니 해..."
확실히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요즘은 대체로 둘 다 어느 정도 수위를 유지하는 편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간 날은 어제처럼 카프리 한 병을 더 마시기도 하면서 서로의 방향을 지지해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연스러운 방향,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말로 내일을 얘기했었다. 그 내일이 밝았다. 아니, 새로운 오늘이라고 해야 하나. 어제까지의 경험 위에 새로움을 더해보는 아침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