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지난 주말에는 형님댁 집들이 겸 경주를 다녀왔다. 일상이 조금 바빠진 아이들을 꼬드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둘째는 사전에 게임 약속이 되어 있고, 보스전을 준비해야 한다며 강경했다. 큰 아이는 주말 동안 학원 보강이 잡혀 있어 어렵다고 했다. 졸지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편과 둘이서 여행 아닌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예전부터 형님, 아주버님과 함께 술 한잔하면서 얘기 나누고 싶어 했다. 명절이라고 해도 형님이 도착하면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었는데, 늘 그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밖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형님댁에서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눌 때였다. 잠이 오는 조카를 데리고 도련님과 동서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어머님께서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도 올라가자"
"어?"
"우리도 이제 집에 올라가서 가자"
"어? 나는 자형이랑 술도 한잔하고 여기서 잘 건데..."
"여기서?"
"어, 오랜만에 자형이랑 얘기도 하고..."
"진짜로?"
"누나하고 자형하고 술 한잔하면서 얘기도 하고, 그러려고 하는데..."
"나는 자고 간다는 생각 안 했는데...혈압약도 안 챙겨왔고..."
"누나 집에서 자고 내일 올라가도 되잖아..."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머님은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형님을 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가야겠다. 잘 생각을 안 해서 약도 없고, 밤에도 자주 화장실 가고... 누가 내 좀 데려다 주가... "
어머님의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형님이 말했다.
"그래, 엄마 내가 데려다줄게... 그게 엄마가 마음이 편할 것 같으면...가입시더..."
경주에 내려오면서, 아니 그전부터 형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남편은 아주버님과 함께 술 한 잔하고 아침에 본가로 올라간다고 얘기했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당연히 본가에 올라가서 잠을 잘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형님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아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어머님을 배웅해드린 후, 형님을 기다리는 동안 셋은 산책을 나갔다. 형님 아파트 뒤쪽에는 송화산이 있었는데,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으면서 마치 자연휴양림에 나온 것처럼 습도를 머금은 산소가 몸속으로 마음껏 밀려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무중력 상태로 얼마쯤 걸었을까, 김유신 장군묘가 보이기 시작했고, 장군의 기운을 배경으로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오는 도중에 형님을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각, 산책 후에 마시는 맥주는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형님은 아이들이 모두 커서 이제는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하셨지만, 남편과 나는 두 아이를 떼어놓고 내려오기는 처음이었다. 옛날이야기도 하고, 보험이야기도 하고,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형님이 어머님을 모셔다드리면서 나눈 대화를 전해주셨다.
"아무래도 쟤가 어디 가서 잠을 자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응? 뭐가?"
"아니, 너는 어릴 때 외가에 가면 동무가 많아 놀다가 자고 오기도 했는데, 쟤는 그러지를 못해서 그런갑다"
"뭘?"
"느거 집에서 잔다는 거 말이야"
형님의 이야기에 남편이 웃으면서 되물었다.
"정말?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어?(웃음)"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대화로 넘어갔지만 남편도, 나도 의문 가득한 표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집에서 둘이 맥주를 한잔하면서 어머님의 예상외의 반응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는..."
"그러게..."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누나 집에서 잠깐 앉아있다가 집에 올라와서 잘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 그래서 잘 준비도 안 하고 오셨고..."
"근데, 그건 뜻밖이었어. 내가 다른 데서 잠을 잔 적이 없어서 누나 집에 자고 싶다고 생각하셨다니..."
"그러게.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진짜 예상 못 한 대답이었어"
"어머니가 보기엔 내가 이해가 안 되었고, 그래서 이럴 것이다, 생각하신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니까, 어머님도 비슷하겠지"
"내가 어머니를 모르는 것도 있겠지... 내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니까..."
"그렇겠지... 그런 말도 있잖아. 우리는 오해받으면서 살아간다, 오해하면서 살아간다"
"오해라... "
"안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