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떨림과 울림」, 「사피엔스」나 「코스모스」만큼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상관없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과학이 아닌, 물리라니. 물리 지식은커녕 과학 지식조차 없는 나의 무지를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관심은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읽어야만 한다'라는 당위성이 생겨나면서 결국 책을 집어 들었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않을까 봐, 핑계를 대면서 읽게 되지 않을까 봐 조금 강제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과학도서를 읽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해보자'
수요 테마 독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올 초에 야심 차게 준비했다.
테드 창의 「숨」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
미첼 레스닉의 「평생 유치원」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어제는 그중에서 김창욱의 「떨림과 울림」 모임 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이 불투명해지면서 거의 3개월 정도 밀렸다. 3월에 시작해야 하는데, 지난 6월에 첫 모임을 가졌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어제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직은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다.
지난달에 읽은 테드 창의 「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숨」이 문학작품이라면 「떨림과 울림」 지식책이었다. 「숨」은 느끼기 위해서 쉬었다면, 「떨림과 울림」 이해하기 위해서 쉬었다. 「숨」이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면 「떨림과 울림」 은 현실적인 안목을 키우게 하는 작품이었다. 「숨」이 소재와 스토리로 이끌어나간다면 「떨림과 울림」은 의문과 관심, 호기심의 서사였다. 그런 측면에서 읽는 것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예를 들어 무수한 물리학자, 고유명사로만 기억하고 있던 법칙들 같은 것들로 인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었고, 기분 좋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 서 있던 「떨림과 울림」이 나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쉽게 읽었다는 분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독서모임을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 거라며, 이번 기회에 읽어서 참 좋았다는 공통적인 의견을 주셨다. 평소에 접하지 않던 분야라서 어려웠고, 동시에 평소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앎이 즐거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을 물었을 때 나온 내용이다.
"떨림과 울림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맥락적으로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지만, 참여라도 하면서 조금 알게 되어서 감사해요"
"차가운 물리학이 아니라 다정한 물리학이었어요"
"과학적이라고 인문학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죽음을 다룬 부분이 있었는데, 죽음에 대해 조금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학에 대한 편견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독서모임에 참여한 멤버들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 '조금 더 배경지식이 많아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리를 해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턴데'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고 배웠다. 과학, 하필이면 제일 모르는 분야이니, 앞으로도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같이 읽으면서 풍요롭게 존재하는 방법,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키워나갈 수밖에. 이렇게라도 읽었다는 것, 읽어가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셔서 힘이 났다. 나의 떨림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참여한 분들이 보내준 울림이 떨림으로 다시 내게 되돌아오고 있다. 「떨림과 울림」, 물리를 통해 사람을, 세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