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가능하면 남편과 함께 <7330캠페인>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저녁을 먹은 후 움직이기도 하고, 걷기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간단한 맥주타임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한다. 며칠 전, 신호등을 막 건넜을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어떤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무심하게 바라보았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레이더에 포착되었는데, 작은 체구의 어떤 아저씨가 살구를 줍고 있었다.
'아, 여기에 살구가 있었구나...'
땅에서 보석을 캐는 사람처럼 아저씨는 살구를 들여다보고 계셨다. 왼손에 살구가 두어 개정도 보이는 것 같았다. 간혹 매실을 줍는 모습은 몇 번 보았지만 살구를 줍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것은 아저씨의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 추억에 빠진 사람처럼 살구를 바라보는 눈빛,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살구를 줍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줍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살구. 나는 살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정에서 밥상이나 간식으로 살구를 본 적이 없다. 할머니 집이 시골에 있었지만 살구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저 반사적으로 새끼 송아지만 떠오를 뿐이다. 혼비백산 도망 다닌 기억과 쇠죽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얌전했던 두 얼굴의 새끼 송아지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골목길을 따라들어온 새끼 송아지가 종종 마당을 뛰어다녔는데 하필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달려든 것이다. 그 모습에 놀라 한 걸음에 대청마루 위로 뛰어올라갔던 날이 생각난다. 그러다가도 아침에 헛간에 나가면 쇠죽 앞에서 어제의 나를 놀래게 한 당돌함은 어디 보냈는지, 참한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쇠죽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대나무 숲이나 누에 벌레의 모습이 필름을 감듯 빠르게 스쳐가지만 어디에도 살구는 없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살구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몇 개는 있는 것 같은데, 하여간 나에게 살구는 교과서에서 만나는 노랑과 주황 어디쯤에 있는 새콤한 열매일 뿐이었다.
살구를 실제로 만난 곳은 병원이었다. 7월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큰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고, 손녀가 걱정된 어머님께서 병원을 찾아오셨다. 그때 보자기에 몇 가지를 챙겨 넣어 오셨던데, 그중에 살구가 있었다.
"이건 조금 더 짙어서 달겠다. 한번 먹어볼래?"
살구, 새콤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아이는 할머니가 준 살구를 받아 입안에 넣고는 오물오물거렸다.
"희한하네. 생각보다 잘 먹네. 하나 줄까?"
아이는 할머니의 살구를 또다시 입안으로 밀어 넣고는 작은 입으로 야무지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얘기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살구, 새콤한데도 잘 먹네?"
"그러게요. 저는 잘 못 먹는데... 진짜 희한하게... 잘 먹네요"
살구가 터질까 봐 작은 도시락 통에 넣어오신 어머님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마음을 알았는지, 내미는 살구를 입안으로 가져가 맛있게, 야무지게 먹어줬던 아이가 떠오른다. 그림으로 존재했던 살구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잊고 지냈던 7월의 어떤 오후가 생각난다. 살구를 줍던 아저씨의 미소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찾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다.
어떤 것을 봐야지, 어떻게 바라봐야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데도 삶이 말을 걸어주는 이런 순간이 고맙다.
'생각보다 추억이 많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지?'
'거대한 서사의 힘이 아니라 짧은 스토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거 알지?'
살구를 줍던 아저씨 덕분에 잠시나마 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내 안으로 좋은 것이 흘러온다는 것, 이런 것이 실로 고마운 일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