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니, 늘 '나다움'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다.
'나다운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나다운 행동은 무엇일까?'
'나다운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확신하면서 때로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겨놓은 모습에 당황하면서 우리는 '나다움'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모습이 나다운 것이라며 안도하기도 하고, 가끔은 저런 모습이 진짜 나다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와 '나다움'을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분별력을 갖추고 본능적인 것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말이다. 더러는 이도 저도 아닌 모습에 실망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을 '나다움'이라는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나다움'에 대해 '본능'을 이야기한다면 너무 가벼울까?
우리는 '나다움'을 위해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을 분석하고 결과에 대해 자문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합리적인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믿고 싶은 결과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는 믿기지 않는 반응을 보이면서 말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답게 느껴지는 구석이 없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불편해한다. 아직 '나다움'이라는 것에 명확한 그림이 완성된 것도 아닌데, '이런 모습이 나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가능성을 열어놔도 되는데,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런 모습이 나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온전하게 '나'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를 위해 머릿속에 집어놓은 수많은 의견, 사회적인 가치, 경제적인 평가가 자신과의 대통합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답지는 자신이 들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다니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긴 셈이다.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본능'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촉수가 거리낌 없이 주파수를 세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말과 함께. 본능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적극적'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나다움'이라는 것은 표현된 어떤 것들의 교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되지 않은 것들의 관계를 따지는 일은 어렵지만 표현된 것들은 구분하고 분류하는 일은 그보다 수월하다. 즉 생각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것보다 행동 속에서 결과를 이해하는 더 쉬울 수 있다.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해관계를 따지는 심사숙고(深思熟考)도 좋지만 '관심이 있어서 한번 해본다'라는 조금은 충동적인 행동 속에 진짜 메시지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러한 행동이 맥락을 가졌다면 정체성을 발견하는 일까지 도움받을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라는 의도성보다 오히려 우연을 가장한 행동이 더 정직하고 근원적일 수 있다. 그것도 반복적인 행동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다움에 대한 사적적인 정의를 찾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흔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평가와 함께 어떤 것을 해왔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판단 없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서툰 날은 대부분 충동적이었고, 본능적이었다. 그 서툰 날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조작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나다움'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유독 불편함을 느끼는구나'
'내가 이런 느낌을 원했구나'
「떨림과 울림」은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라는 말로 끝난다. 괴테는 "행동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말했다. 인생을 문학적으로 바라보든, 과학적으로 바라보든 인생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생각'이 아닌 '행동'이 더 친절하게 대답했다. '나다움'도 그 연장에 있지 않을까. '나다움' 역시 행동이나 태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거기에 평소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도 추가적인 힌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저 앵무새처럼 누군가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본 것, 들은 것, 경험한 것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다움이 궁금하다면 평소 자신이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지 되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국 말 역시, 행동의 결과이며 태도의 산물이니까.
'나는 이런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을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섣부른 평가 없이 그대로 나열했고, 사회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개인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했다. 철저하게 나를 돕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것이 부족하니까, 이것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가 아니라 '네가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오래 할 수 있어. 네가 부담을 덜 느낀다면 그 방향도 나쁘지 않아'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주관적인 판단이 다음 행동에 힘을 실어주었고, 객관적인 세상과 마주할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보다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려는 본능, 생존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다움이 주체성을 향한 여정이라면, 본능이 그 일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