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국문과 출신이세요?"
지금의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아닌데요. 국어는 취약한 분야인데요, 국문학과와 전혀 상관없는 과를 졸업했는데요"
"아?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그러면 조금은 단출한, 하지만 동시에 가장 정직한 대답이 나온다.
"음... 그냥 일기 쓰기 좋아하고,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여기에 있네요"
우리는 꿈을 이야기했었다. 초등학생일 때 "꿈이 뭐니?"가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도 "꿈은 뭐니?"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꿈"이 아닌 "진로"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진로탐색을 위한 자유학기제라는 정식 명칭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꿈'과 '진로', 비슷할 수 있지만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기억에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이라고 대답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진로를 생각해봤니?"라는 질문에는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면 이렇게 되묻는 경우가 많다.
"직업 말고, 네가 정말 원하는 모습이 것이 따로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예를 들어 선생님이 되고 나면 꿈은 완료형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친절한 선생님"이라는 형용사가 붙어버리면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 된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선생님, 마음속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선생님이 되는 과정은 계속적이며, 영속성을 필요로 한다. 그런 관점에서 "꿈"이 아닌 "진로"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다. 어떤 한 지점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에 묻는 것이다. 예전에는 진로조차 직업과 동의어로 쓰였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구분해서 사용되는 것 같다. 진로라고 하면 "앞으로의 길",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열다섯에게도 진로가 유효하고, 마흔에게도 진로가 유효하다.
누군가 내게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딱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없다. 꿈이라는 단어와 함께 주눅 들었던, 자신감 없었던 과거가 떠오르면서 명확한 꿈이 없다는 이유로 답답해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동시에 너무 일찍 꿈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몇 살에 자신의 인생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금세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다. 그것도 지극히 동사적으로, 느릿하게 말할 수 있다.
삶은 오지선다형이 아니다.
삶은 조금 더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서술형이다.
꿈이 아닌 진로, 직업이 아닌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언제나 필요하다.
어려서 필요했고, 컸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은 선택이며, 경험은 선택을 돕는다.
경험을 통해 얻은 가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고 있다.
삶은 명사적이지 않다. 삶은 동사적이다.
오늘도 나는 진로를 두고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