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조금씩 외부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로 멈추었던 일정이 하나, 둘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펴고 있다. 대명 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수필 교실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크릴판을 사이에 둔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행했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의 얼음만이 오직 지금이 여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조금 일찍 도착했고 담당 선생님께서 수필 교실에 참여한 한 분, 한 분에게 소개를 부탁하고 있었다.
조용히 뒷자리에 않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해서 왔어요"
"평소 수필을 좋아해서 혼자 글을 쓰고 있는데..."
"수필을 좀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어서..."
나의 부모님과 비슷한 연세를 가진 분들과의 수필 교실은 처음이다. 간혹 참여하시는 분 중에 1,2명 정도 나이 많은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1,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환갑을 넘긴 경우는 처음이었다.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내가 조금 더 수필에 관여하는 삶을 살았을 뿐, 이분들의 시간과 경험은 나를 넘어서기에 충분해 보였다. 원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때로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며, 눈앞에 가로막은 무언가를 온몸으로 밀치고 빠져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이 글쓰기를 하러 오신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내가 할 일은 분명해 보였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모두 쓰임이 있었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글자로 옮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마음을 종이 위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 내가 할 일은 그것이었다. 글쓰기 원칙을 외우고, 어휘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어사전을 봐야 한다는 것은 두 번째였다. 수필의 정의나 종류보다 지나온 시간을 차분하게 복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도록, 수필이 지닌 고백적이며, 자유로운 특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평소 자주 이야기하는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해 가장 먼저 쓰입니다"라는 말이 그분들에게도 유효했으면 좋겠다.
「그들도 아이였다」라는 책에서 이세돌은 단점을 개선하여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단점은 나쁜 것이라고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 강한 것으로 다듬는 것도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았던 분들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조금 더 자기 자신다워지는 일에 이번 수업이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와 함께하는 글쓰기 수업이 좋은 기억만 불러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팠던 기억, 속상했던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특별한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피아노에 대한 기억에서 목이 멨던 어떤 분의 사연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이 이세돌이 말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이 더 단단해지는,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다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부한 것, 배운 것, 알고 있는 것이 좋은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어떤 분이 말을 건네오셨다.
"선생님, 그래도 선생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세요. 길에서 보면 아는 척해야죠"
"아, 그래야죠!"
잠시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벗고 먼저 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걸 놓쳤다. 나의 부모님 같은 분들이다. 그분들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조금 더 많이 쓰고, 조금 더 많이 웃고, 조금 더 많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수필, 글쓰기에 대한 '앎'이 아니라 내 마음의 '앎', 내 인생의 '앎'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