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취미라고 표현했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지금처럼 출, 퇴근하는 형식이 아니라, 재택근무 형태로 일을 하면서 직장맘이라는 이름표를 내걸 수 없었던 애매한 시절이 있었다. 거의 전업주부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육아는 내 몫이었고, 바쁘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 역시도 그런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하던 해, <문학 21>이라는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몇 번 신춘문예에 떨어지던 찰나에 한줄기 희망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될 거야"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방법을 몰랐고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어디 가서 문학수업을 듣거나 따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재택근무여서 일정 시간은 일에 투자해야 했고, 육아를 병행하면서 다른 뭔가를 계획하고 시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방법은 하나였다.

'꼭 필요한 시간, 그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을 활용하자'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배움"이었고, 현실적인 해결책은 "읽기, 쓰기"였다. 상황이 극적으로 바뀔 확률은 높지 않았고, 육아로 묶여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유지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한국문인 협회에 가입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책을 통해 글쓰기 선배님들의 글을 읽었다. 어떤 식으로 글을 이어나가고, 어떤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읽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하루에 몇 시간, 시간을 정해놓고 아이가 잠자는 시간이나 이른 아침을 이용해 책을 읽었다. 돈, 재택근무로 받은 월급의 대략 10%를 책 사는 일에 투자했다. 도서관을 활용하면 좋았겠지만, 지금처럼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으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그래서 책을 구매해서 읽는 방식으로 읽기 공부를 했다. 마지막은 "쓰기"였다. 호의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올렸다. 그렇지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맨살을 드러낼 때는 일기 쓰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했다. 어떤 식으로든 쓰기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억지로라도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네이버 블로그였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남편은 이런 나의 일련의 행동에 대해 "취미"라는 표현했다. 처음 그 말을 듣고 많이 속상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내 마음의 온도를 정확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 나의 전투적인 노력이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한꺼번에 여러 감정이 올라오면서 2퍼센트가 아닌 20퍼센트 정도의 서운함이 밀려왔었다. 이런 면도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돈을 아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고, 일정한 금액을 자신에게 돈을 투자하는 것이 너무 자기중심적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택근무라도 하지 않았다면, 돈을 벌지 않고 있었다면, 훨씬 더 마음이 위축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애써 발휘하고 있는 추진력에 제동을 거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책을 쓰는 작가가 될 거야"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하는 일을 할 거야"

"나는 독서모임을 진행해볼 거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어떻게 해야지라는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가끔 주위에서 지금의 모습을 보며 그때부터 준비했었는지 물어온다. 거듭 밝히지만 생존전략이었을 뿐이지,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계획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내가 왜 이걸 좋아하지?" 궁금해하며 답을 찾아보았을 뿐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취미생활에 돈을 그렇게 많이 썼는지, 정말 취미생활이었는지. 취미라는 이름 뒤에 있는 숨겨진 진짜 나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5%, 10%라는 기준을 적용하며 노력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취미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나에게는 시도였고, 선택이었고, 행동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를 살리는 방법, 나를 응원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 방식은 지금도 여전하다. 취미로 보일지 모르는 일을 '용기'라는 이름으로 계속 시도해보고 있으니 말이다. 슬기롭다면 슬기로운, 나의 취미생활을 만들어보고 있다. 그나마 요즘은 그 취미생활 덕분에 밥 먹고 지내면서 조금 큰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나를 살리는 방법, 나를 응원하는 방법이 되어주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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