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누군가 혹은 어디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나름 의미가 있다. 막연한 것을 하나씩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름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이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살고 싶은가?'와 같은 조금 철학적인 것에서 "오늘 아침 빵을 먹을 것인가?"와 같은 일상적인 것까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개념의 정립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것은 인생 전체를 이해하는 맥락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어제 낮에 책을 읽다가 문득 머릿속으로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 머릿속에 떠다녔고, 그 이미지를 글자로 옮겨본다.
"생(生)의 대부분에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딸이 물었다.
"엄마는 친구들 안 만나?"
"엄마 친구들?"
"응"
"엄마 친구들... 어릴 때 친구는 울산에 있고, 다른 친구들은 여기 있는데?"
"울산?"
"응... 어릴 때 친구는 자주 못 만나는 것 같고, 지금 여기에도 친구가 있고..."
"아하..."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 시절을 지나고 있는 아이는 가끔 내게 어릴 때의 친구에 대해 물었다.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시기에 또래 집단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재형성해보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아이는 종종 친구에 대해 물었고, 나의 대답에서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상상해보는 것 같았다. 아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한 후, 혼자 생각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나의 지나온 시간과 지금,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친구에 대해서.
나는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내가 다니던 길은 이제 낯선 동네가 되어버렸다. 내 머릿속에선 방송국과 미용실, 문방구가 남아있지만, 그곳에는 지금 높게 올려진 빌딩만 있을 뿐이다. 옹기종기 모여살던 집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라고 불렀던 아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동창회라는 것을 갖지 않았고(내 기억에는 그렇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지금도 몇몇 친구의 얼굴은 기억한다. 나와 죽이 너무 잘 맞았던 친구, 눈 오는 크리스마스에 경복궁에서 만나자고 했던 친구, 어른 티를 너무 잘 내서 다들 두려워했지만 희한하게도 내게 잘 대해주었던 친구까지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또래가 있었고, 무리를 지으면서 생활했었다. 그 시절을 보낸 친구들은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은 아주 가끔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은 울산에 갈 일이 있으면 시간을 맞춰 만나서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근래 여유 있게 울산을 내려간 적이 없고, 그러다 보니, 얼굴 본 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만난 친구들도 생각난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대구로 오면서 그 인연과도 마침표를 찍었다. 날밤을 세워 야간작업을 하고 일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갔던 기억, 팀장이 사주는 점심 한 끼에 전날의 야간수당이 사라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기억, 동일한 감각을 공유한 그때의 동료들이 생각난다.
대구에 와서는 생활반경도 줄어들고,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혼자 지내다가 큰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나와 동갑이었던 친구, 운명인지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앞, 뒤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와 서로 의지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각자 일을 하면서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고, 일 년에 한번 정도의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아파트 위, 아래에 같이 살면서 친구를 사귀었고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일을 벌였고, 지금까지 함께 일을 해오고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한 걱정과 비전, 똑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우면서의 고민을 나누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이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좋은 인연으로 친구처럼, 가족처럼 서로의 일상을 챙겨주는 사람도 몇몇 있다.
사람은 섬처럼 혼자 고립되어서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으면서 그 문장을 발견하고는 '그래,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떠올랐다. 지나온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그리고 지금의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친구까지.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나의 생각에 호의적인 친구는 언제나 있었다. 어떤 특별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나의 노력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고, 나의 시간을 응원해 주는 친구는 언제나 있었다. 친구에 대해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영원한'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닌 나의 시절을 기억하는, 그 시절에 대해 비슷한 마음을 가진 친구, 그런 친구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럴 듯 하지는 않지만 짧은 그림 감상평을 남겨본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