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클라스의 차이를 만든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들

by 윤슬작가

남편이 서울로 출장을 갔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희망적인 표정이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코로나가 생기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준비하고 있던 홈쇼핑이 전혀 예상하지 않는 결과로 흘렀다. 아니 그렇게 될 뻔했다. 동영상을 다시 제작하고 제품 디자인을 수정하면서 '완성하고 싶었던 것'을 향한 여정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코로나는 보란 듯이 변덕을 일으켰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남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일이 겹치면서 조금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던 12월 초, 아무래도 이번 사업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은 당황스러워했고, 담당자와 언성을 높이고 집에 온 날에는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누웠지만 밤새 잠을 설쳤는지 하룻밤 사이에 십 년은 더 늙은 얼굴이었다. 그날 새벽, 지금 생각해 봐도 전혀 위로도, 응원도 되지 않았을 말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여보, 우리 쪽에서 놓친 것도 있으니까 그냥 이번에는 넘어가고, 내년에 하면 되잖아..."

"우리만 놓친 게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도 놓친 게 있어"

"그렇지만 안 된다고 했다면서?"

"다시 얘기해야지.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거기서 안 된다고 했다면서? 그러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다음에는 기회가 더 없을지도 모르잖아..."

"자기까지 그렇게 얘기하지 마..."


'자기까지 그러지 마'라는 말 뒤에는 어떤 말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상황을 재차 알려주면서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던지는 말이 결코 힘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남편에 얘기에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나의' 일이 아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만약 나의 일이었다면, 내가 일 년 동안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쏟아부은 일이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그래,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해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상황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이 남아있다면 무엇이라도 더 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나라도, 나라도 그냥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을 것 같아... 뭐라도 더 하려고 했겠지'


며칠 동안, 남편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메일을 보내고, 담당자와 다시 연락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달했고, 이번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결과물을 보내면서 잘 마무리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남편의 마음이 담당자에게 전해진 것일까. 담당자에게서 추가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연락이 왔다. '아! 다행이다'. 남편의 서울행은 그 추가 진행을 위한 출장이었다. 안도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하는 남편을 배웅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문장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간절함이 클라스의 차이를 만든다'.


살아가는 동안 고양이걸음으로 다가온 것들로 인해 화들짝 놀라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내려앉으면서 뒤로 물러서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러지 말고 씩씩하게 한 번 해 봐'라고 말을 걸어오는 일상이 고맙다. 마치 오늘처럼. 「삶의 한가운데」에서 니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는 낮이나 밤이나 삶을 꽉 채워 일을 하고 있었고, 거기다가 그의 삶에 활력소가 되는 사랑이 있었어. 내 생각에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생기에 차 있을 때야. 그리고 마치 미친 자가 자기의 고정 관념에 몰두하듯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야."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이 삶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일상, 이런 날에는 괜히 마음이 들뜬다.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디면 충분하다는 마음이다.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라는 말에도 동의하지만,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라는 말에 더 무게가 쏠린다고나 할까.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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