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생각했던 것들
많은 부분을 단정 지으면서 살아왔다. 대개는 열등감이었고, 어느 날에는 시기심이었다. 어떤 날에는 허영심인 경우도 있었다. 하여간 이해가 아닌 오해로 이뤄진 것들에 대해 우유부단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판단을 내렸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바라본다면 자신의 것을 지켜내고 싶다는 이기적인 발버둥이었다는 해석 정도. 그런 사람이 글쓰기를 붙잡았다. 붙잡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과 함께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으로 나를 덮친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강물과 함께 떠밀려가다가 힘들게 붙잡은 나무 기둥 하나, 글쓰기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글쓰기. 결코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나를 구하는, 내 삶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옳고 그름이나 이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라도 해야 할 거 같다는 느낌이 전부였다. 나에게 접수된 모오스 부호 같은 말을 종이로 옮기는 작업에 불과했고, 의미는커녕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상황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변화하는 게 없다는 의심만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키우기보다는 막연하지만 믿음을 선택하는 쪽으로 달려왔다. 글은 수시로 엉켰다. 글이 엉켰던 것인지, 마음이 엉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방해꾼으로 인해 넘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은 정직했으며 공평했다. 엉킨 것들이 하나, 둘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도 자연스럽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발견했다. 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어떤 사람. 막연한 배경 속에서 흐릿한 모습이었지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어떤 사람.
세상의 신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언어의 구조, 인생의 구조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단어를 하나하나 떼어내고, 적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로부터 의미를 추출해내는 작업 속에서 마음이 달아오르면서 뭔가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접근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지점이었던 것 같다.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항구에서 출항하는 배가 길을 잃고 있다가 북극성을 발견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발적 격리상태로 기어들어간다. 어떻게 바라보면 '마음대로'이면서 또 어떻게 이해하면 '마음껏'이 되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저절로 이런 시간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약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날도 많다. 벗어나지 않으면,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한 걸음 물러서지 않으면 다시 불러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날에는, 그런 여행을 떠나거나 끝마치는 날에는 유난히 설명이 많았던 것 같다. 왜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려고 하는지, 동굴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를 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알게 되었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고,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몇 번을 얘기해 주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신체 구조의 일부가 바뀌고, 뇌가 중력 밖에서 유영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타고난 체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기하게도 내 몸 안으로 좋은 것이 만들어지는 느낌이고, 새로운 언어로 가득 찬 세계로 나를 이끄는 기분이다. 그런 까닭에 글을 쓰는 것이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음에도 실례가 될만한 글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굵직한 부담감만 아니라면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이 제일 좋다. 나에게서 불필요한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몸에 균형이 잡히는 느낌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무게중심이 제자리를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쓰는 고통보다 그로 인한 혜택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다. 글쓰기가 베풀어준 호의가 마냥 고마울 뿐이다. 이참에 조금 더 솔직해진다면, 어디에도 고백하지 못했지만,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어낸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세상이 던지는 부호를 이해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는 것들이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날려보내는 '날 것의 상태'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인 답변을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막연한 배경 속에서 흐릿한 모습이었지만 내게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눈이 부셨던 순간, 온몸 가득 기운이 솟아나면서 애정과 연민이 솟아났던 그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내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 솟아났던 그날을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가끔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기보다는 뭔가 비틀어 쥐어짜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자리를 만들고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글쓰기는 내게 기쁨이다. 초대하지 않아도 언제든 찾아 나설 수 있는 동무이며, 책임과 의무를 떠나 권리라는 생각으로 다가서는 마음에는 힘이 느껴진다. 글을 쓰면서 여행하는 시간은 나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자유인이 된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