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일상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 점심을 먹은 후 플루트로 메리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해 주고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갔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고 바로 영어학원에 갈 거라고 단단히 준비해서 나갔다. 크리스마스이긴 하지만 다음 주가 5주 차여서 오늘은 영어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 들떠서일까, 아니면 다음 주에 쉰다는 이유 때문일까,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자랑스럽게 등에 걸치더니 큰 목소리로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크리스마스라고는 하지만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기운이 하늘을 가득 매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루 종일 켜놓은 크리스마스트리만 아니었다면 어느 일요일 오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남편, 둘째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우리 집에 가서 놀면 안 돼?"
"어?"
"친구 집에서 놀았는데 우리 쫓겨났어.. 히히히... 갈 데가 없어서..."
"어... 그러니까 몇 명?"
"나까지 합치면, 세 명? 네 명?..."
"이거 좀... 많은데... 아무래도 서로 불편할 것 같아... 아빠도, 동생도..."
"히잉.... 갈 데가 없어..."
"그치?... 이번 크리스마스는 좀 그렇다. 그치?"
"엄마, 아이디어 없어? 어디서 놀면 좋을까?..."
"어... 음...놀이터?"
"잉? 놀이터?"
"그래... 거기서 좀 놀다가..."
"일단... 알겠어..."
그러고 40분쯤 흘렀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나 집에 가는 길이야..."
"금방 오네?"
"친구들도 학원 간다고 하고... 나도 학원 가야지..."
"많이 아쉽겠다..."
"엄마... 우리... 진짜 놀이터에서 놀았어... 그네 타면서..."
"어? 진짜?..."
"금방 올라갈게. 다 왔어..."
현관문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풀이 죽은 얼굴이겠구나 싶었다. 얼른 선수를 쳤다.
"이건 크리스마스 좀 그렇다. 그치?..."
아니나 다를까, 신발을 벗고 들어오자마자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벌러덩 눕더니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내 크리스마스 돌려줘!"
"코로롱이 내 크리스마스 망쳐놨어!"
"내 크리스마스 돌려줘!"
아쉬워하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도 필요 없었지만, 위로라고 몇 마디 더 건네다보면 더 미안해질 것 같았다. 암만 생각해도 아이들은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아이들에게 '감당해야 할 것'만 자꾸 떠넘겨주는 느낌이었다.
미안해서 어쩌니?.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