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피아노 사이 / 건반 위의 철학자

by 윤슬작가

첫 문장.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장폴 사르트르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본 다음이다"



2018년에 추천받은 책이다.

"윤슬작가님이 읽으면 정말 좋아할 책이에요"


추천을 받고 곧바로 읽을 생각으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거의 2년이 흘렀다. 생각이 날 때마다 손길이 낳았지만 선택(choice)되지 못했다. 거기에 일등 공신은 부끄럽지만 '사르트르'였다.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물론,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불리는 샤르트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저자의 풍부한 표현, 깊이가 느껴지는 해석이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사르트르를 읽는 내내 뭔가 실체가 명확하지 않는 대상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결국에 중간에 포기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러다가 <건반 위의 철학자>를 다시 만났다. 수요테마 독서 모임 네번째 지정도서였다. 2년의 시간이 걸렸고, 2년의 성장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 분이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추천했는지, 철학과 피아노의 세계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기를 원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 장 폴 샤르트르


누구나 자신만의 해석과 방식으로 연주한다. 샤르트르는 악보를 주의깊게 읽지 않고 공들여치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약간 어정쩡한, 뻣뻣한 자세에 뭔가 부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샤르트르 앞에 피아노가 없다면 그는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관객같은 느낌이다. 정작 연주 소리에는 별로 관심없는 것 같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에도 샤르트르 특유의 본질에 대한 거친 질문이 느껴진다. '피아노에게 복종하라, 소리에 복종하라'가 아닌 마치 '내가 듣고 싶은 방식으로 듣겠다'라며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다.


샤르트르는 건반 위의 방랑자다. 앨범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악보를 훑어보고는 최소한의 화성만 지키면서 멜로디 라인을 더듬더듬 따라가다가 까다로운 테크닉이 나오면 본체만체 지나친다. 사르트르는 악보를 즉석에서 읽고 연주하는 초견연주자였고 이건 놀랄 말한 일이 아니다. p.30

사르트르에게 피아노는 엄마, 여성,안식처로의 초대였다. 그에게 피아노는 감정을 재정비하고, 본질로부터 관념을 제거하는 도피처였다. 혼란한 시대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해독제였다. 철학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피아노로 존재를 확인하기를 즐긴 샤르트르는 얘기한다. 주기적으로 자신의 내적 혁명을 검토할 수 있는 도구를 가져야 한다고, 동일한 세계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저마다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피아노에서도 취향이 아니라 연주하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처럼,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존주의자 샤르트르다운 제안이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한번쯤은 만나본 문장이다.

"음악없는 삶은 오류다"

아홉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수많은 곡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졌던 니체. 기악곡부터 성악곡, 합창곡, 교향곡까지 70곡의 작곡했고 그 중에 상당수가 미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미사곡, 장송곡, 오라토리오, 미제레레 같은 작품을 썼던 니체. 피아니스트로 불리기를 희망했지만 끝내 그 이름을 얻지 못한 사람이 바로 니체였다. 니체는 혼자 있는 시간이 피아노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같이 있을 때도 친밀함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피아노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 니체는 질병에 고생하면서 읽고 쓰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피아노만큼은 놓지 않았다고 한다.


건반 위의 니체는 즉흥연주와 작곡을 오가며 연주한다. 슈만이 악보에 쓴 대로, 혹은 쇼팽이 악보에 쓴 대로 치는 것에 만족하는 연주자는 그저 솜씨 좋은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독창적 해석을 곁들인 연주를 예술적 목표로 설정하지도 않았다. 니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세계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공부한 작곡가를 손가락 끝에서 발견했을 때, 어린 니체는 자신이 곧 그 작곡가라고 느꼈다. p.100


니체는 귀로 세계를 받아들였고, 소리굽쇠를 울려보면서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했다. 철학을 접근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당시 신과도 같았던 바그너도 예외일 수 없었다. 바그너에게 등을 돌린 후부터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하나씩 우상 파괴를 지휘하면서 개인의 시대, 자유분방한 현대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권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일에서부터 사람을 돕는 설명하려는 니체에게 피아노는 실험무대였다. 편곡을 통해 가치를 재평가하고 연주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마음에게 말고 자양분을 넣어주면서 말이다. 그런 니체에게 철학은, 피아노는 균열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 롤랑 바르트


아마추어리즘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음악학적 선회를 시도한 것은 분명 이제까지의 음악 비평과 다른 점이다. 바르트는 자신의 연주를 분석한 결과,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감정과 시간성을 '소리-본질'의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에 그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주자는 피아노와 물리적 접촉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교감한다. 이 비밀스럽고 사적인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에는 아마추어리즘을 경멸하거나 폄훼하려는 어떠한 뉘앙스도 들어 있지 않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는 기량이 부족한 연주자가 아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연주할 뿐이다. p.146


가장 친근하게 느껴진 피아니스트였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피아노를 치면서 느끼는 감정, 피아노 연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악보와 음표를 보고 연주를 하는 것도 있지만, 가볍게 터치를 하거나 혹은 일부러 더 오래 누르거나 또는 세게 두드리는 것이 있다. 그런 순간에 대한 저자의 서술, 바르트의 생각에 유사성이 느껴져 좋았다. 나에게 피아노는 아주 대단한 것이 아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게 되었을 때의 목적과 상관없이 지금 나에게 피아노는 '자유'이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 시간이 경계를 만들어내면서 삶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본질이다. 우주와 소통하지는 못하고, 적어도 나 자신과 새롭게 연결되는 느낌을 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글쓰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샤르트르. 니체. 바르트 세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음악을 사랑했고 곁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두고 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자유비행했다. 저마다의 해석과 방식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철학을 정립하나갔다. 세계와 존재 사이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피아노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간 사람들. 왜 그 분이 내게 이 책을 그리 추천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었다.


"윤슬작가님이 읽으면 정말 좋아할 책이에요"

그 분의 판단은 옳았다.

나의 리듬을 찾는 일에, 리듬감을 찾는 일에 글쓰기가 아닌 피아노가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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