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힘을 갖기 위한 첫 번째 시도

by 윤슬작가

나는 첫째다. 맏이, 장녀로 태어났다. 그러면서 사회가 부여해놓은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맏이는 어떠해야 하고, 첫째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형식을 나도 모르게 하나씩 하나씩 몸에 걸치면서 차곡차곡 쌓아왔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나를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를 이루는 여러 요소가 되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특수한 상황도 있겠지만, 사회라는 것이 학습을 통해 강화시킨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그런 것에 대해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부모님과 사회는 언제나 옳았고,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말 사회는 옳을까? 정말 부모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내가 문제라고 여기는 상황을 분석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모두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재차 물어보았다. 정말 괜찮은지, 아무 문제가 없는지.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실제는 달랐다. 그들 역시 두려움을 안고 있었고, 완벽한 모습을 갖추지 못한 것에 걱정했고, 자신의 선택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회와 부모님의 제안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좋은 모습,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괴롭다는 이야기와 함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사전에 그것을 막지 못한 죄책감을 느꼈으며,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에는 노력 부족이나 자신이 수행한 것들 중에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일일이 찾아내어 곱씹고 있었다. 그런 과정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지. 안도감을 느끼며 마음이 차분해졌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놀랍기도 했고, 동시에 감사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의 이런 의문이 정상적인 질문이구나.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에게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주어졌다고 생각했고, 원망할 대상을 찾는 것이 부끄럽고 힘들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중대한 문제를 일으켰고, 중대한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스로 좋은 감정,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마음이 나라는 사람과 나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랬던 내가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해한 후부터 조금 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를 좋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게 일어난 일 속에 숨겨진 긍정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 마음속에 좋은 에너지, 긍정적인 감정을 넣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자주, 쉽게 나올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도 열심이다. 그런 과정을 위해 우선적으로 나는 어떤 생각 하나를 버렸다. '모두를 만족시켜줘야 한다'.



나의 노력에 의해 상황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감정을 속이고, 생각을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내는 것, 나를 믿는 힘을 갖기 위한 첫 번째 시도였던 것 같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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