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by 윤슬작가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혹은 성공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 시간에 필수적으로 제시하는 글쓰기 질문 중의 하나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물론 평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어려움을 호소하면 평소 생각했던 것을 적어도 좋고, 금방 떠오르는 것을 적어도 좋다고 말해준다. 웅성웅성, 갸웃갸웃. 한참 동안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다가 이내 사각사각 종이를 채워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실마리를 붙잡고 하얀 종이 위로 쏟아내는 저마다의 언어들, 언어의 재잘거림이 들려올 때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진짜 배워야 할 것이 따로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결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과정에 대해서만 들여다보겠다는 얘기이다. 성공을 보장한다는 조건은 또한 어떤 의미일까. 경험을 자산으로 인정하고 가치 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수용의 태도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러한 방향에서의 글쓰기 과제를 제시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삶은 순간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이벤트의 연속이 아닌 일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유지하며 반복을 이어나가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힘을 마주하는 일에 저만한 질문이 없다. 사실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놓은 한계, 울타리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다. 그것도 따뜻하고 친근한 방식으로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글쓰기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발견할 수 있으니, 이만한 행운이 또 어디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지만 저 질문 속에는 숨겨져 가치가 따로 있다. 바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힌트가 숨어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부문을 걱정하는지, 불필요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습관처럼, 관습처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밝혀낼 수 있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중요한 사실과 함께.

'이런 부분을 내가 두려워했구나'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것을 어려워하는구나'

'진정ㅇ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에 인생이 너무 아름답다. 사명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숨겨진 즐거움이 너무 많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완전하게, 온전하게 누리는 것은 혜택이며 권리이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시도하는 것도, 멈추는 것도 모두 두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실체를 알고 있을 때 자신감도 생기고, 신뢰감이 만들어진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의 영혼을 깨우는 질문으로 인해 독배를 마셨지만, 21세기에는 그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좋은 질문 속에 좋은 대답이 숨어있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질문이 어렵게 느껴졌다면 조금만 바꿔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혹은 성공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오래전,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며, 지금도 수시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끊임없이 떠올렸던 질문이며,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떠올리는 질문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는 힘의 절반은 이러한 질문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 이후부터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주 뜬금없는, 그러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기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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