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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연금술사>가 되는 방법을 발견하다

by 윤슬작가

2004년 서른이 된 어느 날, <연금술사>를 만났다. 서른 잔치가 시작되는 시점에 만난 셈이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보여주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이십대를 마무리했고, 동시에 어떤 대단한 결심이나 새로운 다짐도 없이 서른을 맞이한 날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연금술사>에 관심을 보였고 파올로 코엘료의 언어에 빠져들었다. 나 역시 그중의 한 사람이었고, <연금술사 >이후 그의 책을 이어서 몇 권 더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마치 유행에 어울려 옷을 샀지만, 나와는 맞지 않다는 느낌. 그러니까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보다는 현실적이었지만, 그 연장선에 있는 디즈니 세계의 마법 이야기로 치부했던 것 같다. 자아의 신화, 꿈, 연금술사, 사막의 언어...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다.


양치기 산티아고.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꾼 그는 집시와 살렘의 왕을 만난다. 살렘의 왕은 그에게 운명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하는 여행자가 되라고 말해준다. 동시에 그는 매 순간 훌륭한 순간이 사람들을 찾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치는 것은 물론 포기할 이유, 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고 얘기한다. 산티아고. 그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산티아고는 양을 팔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향해, 자신의 보물을 찾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자의 삶을 선택한 산티아고에게 살렘의 왕은 당부한다.



" 세상은 모두 한 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그의 당부를 가슴에 새긴 산티아고는 여행길 내내 자신의 소망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동시에 자신의 양을 기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결정을 따르기로 한 산티아고는 이집트로 향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해 그는 가진 돈을 모두 잃고 크리스탈 상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절망감에 빠진 산티아고는 양을 구할 돈을 마련해 다시 양치기가 될 계획을 세운다. 그렇지만 넉넉한 돈을 장만한 산티아고는 살렘의 왕이 전한 당부를 기억해 냈고, 초심자의 마음을 떠올려 자신을 찾아온 표지를 읽어낸다. 결국 그는 메카에 가는 것을 앞으로도 꿈으로 간직하겠다는 크리스탈 상점 주인을 뒤로하고 이집트로 떠난다. 이집트로 가는 길, 산티아고는 연금술사를 만나기 위해 평생 책으로 공부를 이어온 영국인을 만난다. 연금술사를 만나고 싶다는 영국인. 자아의 신화를 완성하겠다는 산티아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의 보물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안내하는 낙타 몰이꾼은 사막의 언어에 능숙한 사람으로 알듯 말듯 한 언어로 산티아고를 사막의 세계, 자아의 세계로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한다.


"난 음식을 먹는 동안엔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소. 걸어야 할 땐 걷는 것, 그게 다지. 만일 내가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게 언제가 됐든 남들처럼 싸우다 미련 없이 죽을 거요.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물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게요"


사막을 횡단하던 중 오아시스에서 산티아고는 평생의 연인 파티마를 만난다. 그는 고민에 빠진다. 오아시스에 남을 것인가, 자아의 완성을 위해 보물을 찾기 위해 가던 길을 이어나갈 것인가. 고민에 빠진 산티아고 앞에 연금술사가 나타난다. 그는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얘기한다. 산티아고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그는 연금술사에게 보물을 찾아 떠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연금술사에게 의견을 물었고, 연금술사의 조언을 들은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은 후 다시 파티마에게 되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여행을 계속 이어간다.


"마크툽, 내가 만일 당신의 신화라면, 언젠가 당신은 내게 돌아올 거예요"


부족 간의 전쟁으로 여러 번 위기에 빠지지만 산티아고는 드디어 사막의 소리, 바람의 속삭임, 해의 이야기를 읽어낸다. 결국 위기 앞에서는 솔직함으로, 의심 앞에서는 용기로 여행을 이어나가던 산티아고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낸다. 그러고는 조용히 속삭인다.


" 파티마, 기다려요. 이제 그대에게 달려가겠소"


내 나이 마흔일곱. 웃기는 얘기 같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들은 것 같다. 금이 좋아졌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반지를 몇 개나 지니고 있다. 물론 하나, 하나 다른 의미를 지닌 반지들이다. 그런 모습이 스스로 어색해하면서 맥락도, 의미도 없는 말을 농담처럼 건넨다.

'이러다가 연금술사가 되는 거 아닐까?'


<연금술사>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던 서른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이다.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느껴진다. 서른 후반쯤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와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의 감동이 밀려온다. 나아진 것이 없다고 다그치지 않아서 좋고, 뭔가를 이룩해내지 못했다고 재촉하는 것도 없었다. 디즈니 세계의 마법 이야기로 치부하는 느낌도 완전히 사라졌다. 모호하지도 않았고, 애매하지도 않았다. 분명한 말투였고, 정확한 표현이었다. 철학자의 돌을 발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읽는 내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마주한 기분이었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 감사한 마음이 일상의 곳곳에 퍼져나갔다. 자아의 신화, 꿈, 연금술사, 사막의 언어... 내게 너무 먼 당신이 아닌 언제나 내 편으로 남을 단어였다.


<연금술사>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고, 내 인생의 연금술사가 되는 방법을 연구하는 시간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이었다.

<연금술사> 코엘료의 언어 속에는 우주의 언어를 숨어있었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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