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길이 있을까
〈코스모스 〉와 〈이기적 유전자〉는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었다. 일단 장르, 과학이었다. 한 번도 '이거 재미있겠네'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영역이었다. SF나 판타지를 읽어오면서 조금씩 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왔다고 해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두께였다. 지금까지 읽어온 책 중에서 이런 두께의 책은 인문학 관련 책이었다. 아주 약간의 용기와 시간을 담보로 재미있을 거야, 괜찮을 거야 다독이면서 참을성을 발휘하면 어떻게든 마지막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이건 글쎄,였다. 세 번째는 욕심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기엔 어려운 걸 알면서도 모두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 이 욕심이 선뜻 손이 나가는 것을 막아섰다. 정말 욕심임에도 불구하고 하여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다가 큰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덤벼들었다. 핵심 개념만 이해하면 되잖아. 인문학 책을 읽듯 아주 약간의 용기와 시간을 담보로 참을성을 발휘하면 되지 않을까, SF나 판타지도 읽다 보니까 재미있었어졌잖아, 이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한 권을 마무리했다. 그 첫 번째 영광은 <이기적 유전자>에게 돌아갔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는 어느 과학자의 이야기처럼 <이기적 복제자>라고 해도 틀린 제목이 아닐 것 같다. 그는 책에서 '복제'라는 개념이 지금까지 인류, 지구의 진화를 설명하는 기본 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유전자(gegne)든, 밈(memem)이든 말이다. 우선 이 책의 전반부에는 그는 유전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류 및 지구가 진화를 걸쳐오는 과정은 종이나 개체가 아닌 유전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유전자가 자신과 유사한 유전자, 혹은 동일한 유전자를 복제해내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장수, 다산, 복제의 정확도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유전자들끼리 경쟁 혹은 협력하면서 말이다. 그런 과정이 마치 유전자가 똑똑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이기적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충분할 것 같다. 적어도 리처드 도킨스는 책의 제목을 '이기적 유전자'라고 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므로. 동료 과학자나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었지만, 그의 과감한 단어 선택이 사람들에게 보다 더 '진화'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든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책이 중반 이후부터 '협력적 유전자'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이 부분은 역시 유전자가 똑똑한 두뇌로 협력을 한다는 의미보다는 결과론적으로, 유전자가 복제해온 과정에서의 패턴 속에 '협력'이 숨어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후반에 넘어가면서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 밈(meme)이 등장한다.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라는 단어를 만들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로 완성하고 싶어 밈(meme)으로 정했다고 한다. 밈(meme)은 모방이라는 과정을 통해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밈(meme)은 예를 들어 왜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도우려고 할까처럼, 문화적 돌연변이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개념이다. 유전자를 통해서 진화가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것과 상관없는 상황을 해석해야 했고, 리처드 도킨스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밈(meme)으로 정리했다. 특히 다른 종이 아닌 인간이라는 종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개념이라고 했다.
종교, 맹신, 독신, 곡조, 사상,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밈의 예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밈이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말과 글 즉 언어가 촉매제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매력적인 결과가 자주 출현하면서 밈(meme)은 살아남을 수 있게 있었고, 누군가의 뇌에서 다른 누군가의 뇌로 복제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밈(meme) 또한 유전자(gene)와 똑같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복제'를 통해 수명을 이어왔고, 영속성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진화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리처드 도킨스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닌 능동적인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는데 책에서 밝힌 그의 생각을 소개하면 조금 더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것 같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서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이기적 유전자 p.378 "
<이기적 유전자>가 지닌 핵심 메시지를 조금이라도 정리해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리해보았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너무 기초적인 수준에서 마무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 책을 마주하기 전과 비교해본다면 개인적으로 놀라운 발전이었다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또 다른 어떤 것을 읽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자신감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유튜브도 찾고 네이버에서 검색도 많이 했었다. 그때 김상욱 교수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서 다른 질문이 생겼다고 했는데, "기존에는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었는데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서 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라고 했었다.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무엇일까'
'나를 이루는 유전자(gege)와 밈(meme)은 무엇일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