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견을 가지다는 것

by 윤슬작가

오랫동안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특정 대상이 정해져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호의적인 피드백을 희망했었다. 한때는 부모님에게서, 조금 더 커서는 친구들, 사회 집단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를 인정받아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마흔을 넘긴, 마흔일곱의 나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어떤 특정 대상이나 무리,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성적이나 점수가 나를 대신하고, 그것이 곧 내 삶을 결정한다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마음이 만들어낸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동기부여가 되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 일시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어려웠고,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으면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풍요롭게 존재한다는 것은 발견하는 일도, 지속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다르다. 요즘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일, 내가 즐거워지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과정 이전에 거쳐온 작업이 있다.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 같다. 내가 어떤 일에 행복해하고 만족감을 느끼는지,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어떤 상황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는지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타인의 인정에 갈구하는 이유에 대해 몸으로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하나씩 분리 작업을 진행했다. 다시 말해 내 삶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온 셈이다.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면서 나의 의견이 하나씩 세워졌다. 자신의 의견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가치, 나는 누구보다 이 과정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의견을 세우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있다. 과정적으로 결핍이나 열등감, 패배감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나를 다독이는 노력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가설을 세우고, 실행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 '나'라는 존재가 가치 있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나 긍정적인 피드백이 아닌 내 안에서 나온 '나의 의견'이다.

나의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

나의 의견에 근거한 행동을 하고 있느냐?


매 순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대답에 대한 힌트를 생활에서, 행동에서 찾아보고 있다.

축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나의 의견이며, 인정받아야 한다면 나의 의견에 근거한 행동에 대한 만족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의견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의견은 자율성을 근거로 한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만한 일이 아니라면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의견에 근거한 행동을 통해 '나'를 세워나갔으면 좋겠다. 언제나 현명하고 좋은 의견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자책하고, 부끄러움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가설을 검증하고, 행동하는 단계에서 오류가 없었는지를 찾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결과만 두고 평가를 한다거나, 결과에 대한 호의적인 피드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의견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을 나는 자주, 많이 보았다. 자신의 의견을 가진다는 것이 세상에 다가갈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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