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것들이 있다. 차마 밝히지 못하고, 어디에선가 무심결에 밖으로 새어 나올까 봐 걱정하는 것들이 있다. 나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 부끄러운 마음에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부끄럽고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다. 큰 사고를 당할 뻔했고, 큰 사기를 당할 뻔했고, 큰 아픔을 느꼈고, 배신감 아닌 배신감도 경험했다.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나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쁘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누굴 괴롭히면서 살아온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묻고 다녔다.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사과 보살을 찾아갔던 것도 그런 날의 하루였지 싶다. '사는 게 원래 이런 건가요?' '다른 사람은 괜찮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만 힘들게 살아가는 것 같죠?' '운이라는 운은 모조리 나를 피해 가는 것 같아요' 따지듯 물어대는 얼굴에 대해 뭐라고 대답해 주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매사 나는 빨리 답을 얻고 싶어 하고,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설명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눈앞에 있는 것만 쫓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결과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던 사람이 나였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삶이 나에게 연습문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거구나'
결혼 전의 나는 지닌 것도 별로 없으면서 세상 용감한 사람이었다. 부모님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살았다. 그러면서 오만함이 생겼고, 나도 모르게 성급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은 일에도 큰 반응을 보이는 다소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 나에게 진짜 어려운 숙제가 찾아왔다. 결혼을 하고 겪은 두 번의 사건. 그 사건들은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았고,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그 과정을 겪은 후 나온 말이다. '삶이 나에게 연습문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거구나'
첫째가 아파 몇 년 동안 ktx로 서울을 오갔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일은 쉽지 않았고, 순간의 힘으로 하루를, 일 년을 살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거기에 또 하나의 숨겨진 복병까지 있었으니. 둘째 임신 초기 검사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착한 암'이라고 하지만 결코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불한당 같은 느낌이었다. 둘째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정기 검진을 갈 때마다 혹이 자라고 있다는 말은 나의 감정을 나락으로 어렵지 않게 빠뜨렸다. 불안함은 계속되었고, 일상은 수시로 흔들거렸다. 그러면서 첫째가 아닌 나를 위한 서울행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를 낳고 수술을 해도 된다는 선생님을 찾기 위한 여정. 다행히 최악은 피했다. 그때 낯선 단어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 난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이야. 최악은 피했잖아' 아이를 낳고 수술해도 된다는 전문가를 만났고, 둘째를 낳은 후 수술을 받았고,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에 첫째를 담당하시던 선생님으로부터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키우면 된다는,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키우면 된다는 고마운 말을 들었다.
결혼 후 몇 년간의 혹독한 인생수업은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완벽하게 바꿔놓았다. 세상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이 없으며, 무탈한 아침을 맞이하고,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감동적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는 시간을 마주하는 경험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삶이 나를 호의적으로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요즘은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아프고 힘든, 속상한 날들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남겨진 날에는 좋은 날이 더 많이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