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방법에 언제나 도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by 윤슬작가

분명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생각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감정의 영향력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감정은 생각에 영향을 주고,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내 안에서 생겨난 감정이 주인이 되어 일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렵지만 기분 좋은 상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창한 방식이든, 사소한 방식이든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학원에 가는 길이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장을 봐서 집에 왔을 때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집안에 있는 아이는 본다는 것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를 보는 순간 입에서 예쁘지 않은 말이 발사되었다. 자주, 많이 얘기했으니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라고 믿고 싶었던 마음에 또다시 균열이 생겼다. 최대한 마음을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적인 말을 내보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유는 이기적이었다. 아이에게 혼을 낸 이후 후회하는 내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아이가 나간 후 혼자 허공에 대고 소리를 높였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날이 없냐고?"

"잔소리 듣기 싫다고 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상황을 왜 자꾸 만드는데?"


삐.삐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 당황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아이가 화장실에 간다고 들어왔다. 내 말을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혼자 속으로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며 위로했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잖아. 그래, 그게 어디야...'

속피 좀 풀려서일까. 아이가 나간 후 왜 이렇게 예민해졌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이제는 좀 알아서 하겠지라는 기대감이 한몫했던 것 같다. '그럴 수 있지'가 되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지'라고 내심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타이밍이 맞지 않아 하루 종일 밥을 먹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 같았다. 일단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장 봐온 것을 냉장고에 밀어놓고 반찬과 밥을 꺼냈다. 밥은 30초만 데우고, 시금치 나물을입에 넣으면서 유튜브를 열었다.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된 tvn 철인왕후를 열었다. 10분, 15분정도 흘렀을까. 두 주인공의 코믹한 연기를 보고 있는 동안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져있었다. 혼자 피식피식 웃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에 소리 지른 사람이 나였나?' 싶었다. 밥을 먹은 후 정리를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까지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았다. 당연히 이어진 생각이나 행동 역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화가 난 것도 사실이었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휴식도 필요했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일상에는 이런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나는 이런 방식을 '시선돌리기'라고 표현한다.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더이상 스스로를 밀어넣지 않는 방식이다. 회피라고 할 수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하게 다르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받아들임과 인정이다. 나에겐 아이 문제가 그렇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머를 되찾는 방법, 유쾌함을 회복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느니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감정, 긍정적인 감정이 중요하지만 거기까지는 어렵더라도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쉬게 해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계속 땅바닥을 발로 차면 땅은 패이고 몸은 점점 더 아래로 빠져들게 된다. 반복적으로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면 그 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가장 큰 문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우울감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시선을 돌려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왜 그런지,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인지 알아내고 원인을 정확하게 제거하면 좋겠지만 모든 일의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러허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의지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나중에 내가 가장 후회를 적게 할 방법을 찾는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편안한 상황으로 데려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내 마음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얼른 몸을 움직여야 한다. 무게중심을 옮겨 상황도 살리고, 자기 자신도 살려야 한다. 나를 살리는 방법에 언제나 도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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