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등단한 사람을 작가라고 해야 하는 건지, 책을 한 권 낸 사람을 작가라고 해야 하는지,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 모두를 칭하는 말인지, '작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언제나 비슷한 대답을 한다.
"제가 정의 내린 작가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당황할 수도 있고 재미없는 일상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책임감이나 의미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무늬는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이다. 하루 밥 세 끼를 먹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글을 쓰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는 돋아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솟아난 가시가 하루 종일 맘에 걸리는, 버거운 감이 있어도 쓰고 나면 체지방이 분해되듯 1g 정도의 불필요한 요소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이런 감정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하고 분명한 표현일 것 같다.
글을 쓰는 과정이 분명 어렵기는 하다. 구조적으로 완성하는 것도 그렇고, 강요가 아닌 설득이 될 수 있는 문장을 완성하려고 애쓰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사전도 찾아보고, 자료를 찾기도 한다.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인지 기억이 나면 그 책을 찾아 확인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때가 많다. 하지만 동시에 달리기를 한 이후처럼 몸이 후끈 달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그 느낌이 좋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지니고 있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이 되었고, 밥벌이가 되었다.
"읽고 쓰는 게 그렇게 좋아요?"라는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독서가 나를 살렸고, 글쓰기가 나를 깨웠다"라고.
나는 멋있는 사람이 되려고 책을 읽지 않았다. 부족하고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읽고 썼다. 나는 부자가 되려고 책을 읽지 않았다. 명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가 명품이 되는 방법이 궁금했다.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투쟁의 결과가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나'를 넘어 '누군가'를 향해 범위가 넓혀졌을 뿐이다. 누군가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고 싶다는 마음, 명품이 될 누군가의 뿌리에 영양분을 주는 일,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겨나면서 나름의 방향이 만들어졌다. 방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노력이 더해지면 위대함에 이른다는 에머슨의 조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마음으로 떠올리며 오늘의 글쓰기를 마무리한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