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 편은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by 윤슬작가

"심화 편은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가끔 혼자 있을 때 하게 되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전하다가 또는 필요 없는 공식을 반복적으로 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견을 말해주다가, 독서가 왜 필요한지를 강조하다가, 평생학습에 친숙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다 보면 반복적으로, 저절로 나오게 된다. 표현이 거창하게 느껴져서 그렇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평생 배워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저런 이야기를 할 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 현실성이 뒤떨어진다는 말했다. 당장 밥 먹고 살아가는 일을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떻게 거기까지 신경 쓸 수 있냐고 고집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배울수록, 경험할수록, 들을수록, 알아갈수록 '갈 길이 멀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얕은 지식을 확인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도 아는 게 어디야!'라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살자', '하나를 알았다고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지 말자', '배우는 사람,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말을 거듭 다짐하게 된다.


어떤 자리에서는 말을 많이 하게 되지만, 듣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아니, 듣는 일을 즐긴다.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시간은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경험하지 않는 것, 느껴보지도 못한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럴 때 '나'라는 자아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것, 혹은 방식, 그럴 거라는 추측 같은 것은 저 멀리 던져놓는다. 내 안이 꽉 차 있으면 누군가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내가 비워지고, 공간이 생겨야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다른 생각이 들어오고, 다른 방식이 들어올 수 있다. 상대방의 고유한 주파수가 나의 주파수와 만나 하모니를 이루려면 서로에게 내어준 자리가 있을 때 가능하다. 입문이 아닌 심화 편은 거기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의해서든, 경험을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본질적으로 배우는 방식은 비슷한다. '나'를 고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의 이해와 확장을 돕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스승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서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실 매 순간이 처음이니, 마주하는 것과 살아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익어가고, 성숙되어가야 하는데, 처음이니까 기본만 해도 된다는 착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기본만 해도 충분하지, 고생해서 더 깊게 알려고 하면 머리만 아프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각도를 돌려서 바라보면 완전히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살면서 도움받고 있는 것, 알게 모르게 받은 혜택까지 그 모든 것은 기본이 아닌 심화 편을 연구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이든, 친구, 세상을 이끈 선구자이든 서사적으로 깊게 바라본 이들의 노력 위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심화 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시간을 활용하고, 마음을 배려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0대, 30대, ... 50대, 60대.. 70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앞자리 숫자가 커지는 많은 성숙함이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의 질서와 화합을 이루기도 해야겠지만, 때로는 깨부술 수도 있기도 해야 한다. 어디까지 연습이고, 어디까지 실전인지 구분이 가지 않겠지만,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기본만 하고 있는가? 심화 편을 수행하고 있는가?"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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