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원고를 받을 때마다 혼자 여러 생각에 빠진다. 초고를 쓰고, 몇 번의 퇴고를 거치고 완성하기까지, 출판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 흔한 풍경이 결코 흔하게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매번 마음이 새롭다. 묵직하다고 해야 할까. 특히 '최종'이라는 글자는 더욱 그렇다. '퇴고'라는 글자를 피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 몇십 번, 몇백 번 올라온다. 그런 상황에서 '완벽'이라는 어떤 수준보다 '마감'이라는 단어에 의지해 책임감을 발휘해냈다는 것을 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저자들의 최종 원고가 들어올 때면 그 속에 빠져있다가 함께 밖으로 걸어 나오는 기분이 든다.
"왜 책을 쓰려고 하세요?"
"한 권의 책을 완성하고 싶은 건가요?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은 건가요?"
책 출간에 앞서, 출간 기획서 작성에 앞서, 반드시, 여러 번 묻는 질문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들이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되묻게 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책을 쓰려고 하는 걸까?"
"이번 책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한 권의 책이 필요한 사람인가? 책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더디게 이어나가다가 갑자기 깊이를 체감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책을 쓰는 일도 그렇다. 잘 알 것 같다는 생각에 초고를 써 내려가지만, 이름을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멈칫거리는 게 된다. 그러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거기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퇴고라고 말하는 것이, 이런 과정을 무한하게 되풀이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전체적으로 먼저 다듬고, 다시 세부적으로 하나씩 들춰내고 다듬으면서 진행하는 퇴고. 초고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퇴고를 진행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 한계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재능을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작한다. 물론 문학작품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시나 소설 같은. 탁월함이나 비범함이 요구될 수 있다. 하지만 수필이나 에세이는, 그것도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렇고. 그래서 마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날이 되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메일 발송 버튼을 눌러라고 얘기한다. 그래야만 가쁜 호흡을 내쉬며 긴 호흡으로 들이마시면서 평상시의 호흡의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편집자 일을 그렇지만, 작가 생활에 대해 더 많은 언급을 하다 보니, 퇴고 이야기를 자주,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함께 준비하는 저자들이 조금 더 고생하는 분위기 같은데, 정말 헝클어진 머리, 넋이 나간 표정으로 최종 메일을 보내온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이 나는 문장을 발견하면 힘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메일이 들어온 것도 그렇다. 아주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아주 소중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소식에 힘이 난다. 책 쓰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 그것을 스스로 발견해낸 모습에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고 싶다. 이 모습을 위해, 이런 순간을 위해 몇 달 길게는 일 년 가까이 함께 걷는지도 모르겠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