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삶 속에서 완성해야 한다

by 윤슬작가

글쓰기로 이어온 지금까지의 삶은 만족하시나요?”

만족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다듬을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시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의 기록 삶의 동력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는 느낌이 좋다.


“지금 행복하나요?”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행복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부와 명예를 지녀야 한다’라는 관념론적 기준이 아니라면, 나는 행복하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을 나는 긍정한다. 글에 대한 책임감으로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뼘의 성장이 이뤄졌음을 동시에 긍정한다.


글쓰기는 삶을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하거나 구체적으로 만들기를 더 좋아한다. 글을 쓰기 위해 세상과 단절하거나 고립될 필요는 없다. 글을 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산으로 갈 필요도 없다. 오히려 ‘산’이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의 그 무엇도 ‘삶(살아가는 것)’보다 우선일 수 없다.


- <글쓰기가 필요한 시간> 중에서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시작했을 확률이 높다.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입구에 다다르는 방법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허락하느냐, 허락하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단 하루로 끝내 일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글쓰기는 그랬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마음을 허락했고, 시간을 지불했다. 생각의 변화, 혹은 삶의 변화는 그 다음이었다.


간혹 글쓰기를 위해 어딘가로 떠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한, 특히 혼자 있는 글쓰기 시간을 위한 떠남이라면 나의 의견은 다르다. 차라리 어딘가로 떠나는 것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혼자가 된 상황에서 서서히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으로 자판을 두드리든, 종이를 채우는 것으로도 내밀한 거래를 완성시킨다. 가끔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면서. 충만해진 느낌과 불안한 감정이 충돌을 일으키며 난잡한 무늬를 그려내더라도, 차라리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것이 글쟁이의 삶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을 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뭔가 애쓰던 것을 던져두고, 나 몰라 하며 달려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글쓰기를 위한 도피가 아니었다. 삶으로부터의 도피였다. 삶이 던진 과한 숙제로부터의 탈출 시도였을 뿐이다. 온갖 이유를 대면서 정당성을 부여하며 달려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허세이며, 오만이며, 나를 기만한 것에서 온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란 걸음으로 서둘러 되돌아오기 전까지, 그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날에는 어김없이 글을 썼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왜 살아야 하며, 왜 돌아와야 했을까. 수십 번 되뇌며 풀어냈던 문제를 다시 마주하며 또다시 백지를 채워나간다. 나의 글쓰기는 언젠가 그런 방식이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면 예외 없이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과 마주했다. 신경질을 부리며 원망하기 보다 지금의 상황을 또렷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발견되었다. 때로는 수치심이 찾아들기도 했다. 겨우 이런 일로 그런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과정속에서 어느 때보다 순수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글쓰기를 위해 어딘가로 떠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삶 속에서 완성해야 한다. 가끔 애처롭고, 또 가끔 서글프고, 그보다 더 가끔 달뜨는 일이 생기는 것이 삶이라고 불릴지라도.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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