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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작가 Nov 16. 2021

군자라니요?

인생 책을 추천해달라고 얘기하면 가장 먼저 논어를 얘기한다. 몇십 년 전에도 그랬고, 몇 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펼치는 페이지마다 다른 문장을 발견하고 전에는 미처 영감을 받지 못했던 문장에 마음이 꽂혀 문장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한다. 여전히 내가 배워야 할, 아니 실행으로 옮겨보고 실험해 봐야 할 것들로 가득한 것이 논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논어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과 맞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특히 제사, 효, 예절에 관한 부분에서는 교양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겠으나 실천은 별개의 영역이다. 공자가 도를 향하는 관점에서 군자를 최고의 인물로 제시했으며, 그 출발점을 '효'로 삼은 까닭에 현대에는 다소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난 화요 인문학 시간 발제문에 군자를 한 줄로 정리해달라는 제안을 했었다. 군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두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인과 예를 따르려고 애쓰고, 시와 예술에서 노니는 모습이라고 정의를 내려가던 중이었다. 공감력을 발휘하며 마음을 나누다가 혹시 주변에 군자를 닮은,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를 묻게 되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지내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만의 장르를 완성해나가는 일에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 좋을 거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군자를 닮은 사람으로 나를 거론한 분이 계셨다. 그러니까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셈인데, 고마운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도 과분한 평가라는 대답을 돌려준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알고 있다. 명확한 기준으로 줏대 있는 선택을 내리기보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위해 마음속의 호불호와 씨름한다. 마음에게 이끌려 저울에 매달린 것처럼 좌, 우로 방황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후회를 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관대하고 따스한 결정 뒤에는 나만이 알고 있는 발버둥의 과정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노력한 결과치고는 지나침이 분명했다. 어느 때보다 솔직한 대답이 필요했다.

"저는 제 마음의 이중성을 잘 알아요. 한계도 잘 알아요. 100%라는 것은 없거든요. 60 대 40 혹은 70 대 30이라는 경계에서 방황하다가 길을 잃거나 뒤로 넘어지기도 해요. 그저 매 순간 어떤 것이 더 옳을까, 어떤 선택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를 두고 깊게 고민할 뿐이에요. 이럴 때는 가만히 걷기를 하거나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아끼는 책을 펼쳐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해요. 희한하게도 그런 일련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마음이 잠잠해지면서 결정을 내리는 일이 한결 쉬워지거든요. 군자라니요, 아고, 말도 안 됩니다. 군자의 길을 바라보면서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에 불과할 뿐이랍니다."

책상 한구석에 자리 잡은 논어는 수시로 모습을 바꿔 내게 말을 건네온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할 때에도, 어림없는 일이라며 콧방귀를 낄 때에도,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데라는 조바심이 고개를 내밀 때에도, 오래된 풍경처럼 자리를 지키고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본래의 무늬를 잃지 않고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떤 날에는 단호하게, 또 어떤 날에는 적당히 부드럽고 친근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생친구로 삼지 않을 수 있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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