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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삶을 믿어보는 것

by 윤슬작가

"나의 비전은 나와 내 삶을 믿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근거로 독백처럼 수시로 되뇌이는 문장이다. 문장의 완성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분석하고 이해하고 공부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장이다.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라는 당위성을 경계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 나를 덮쳤을 때 원망할 대상을 찾아내는 일에 누구보다 빨랐으며, 모순되는 점을 찾아 따져 묻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가시를 숨긴 채 경계의 눈빛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닐 것 같다. 상황이나 환경이 그렇게 불안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허공에 발을 디딘 느낌이 강했다. 그랬던 사람이 '나'와 '내 삶을 믿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스스로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다.


과연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하나의 조건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러 가지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가까운 곳에 머물며 손만 뻗으면 좋은 얘기를 던져주는 책도 있었고, 내 편이라는 믿음을 주는 가족과 친구도 한몫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만약 개인적인 노력을 제외한다면 나는 책과 가족, 친구들에게 그 공을 돌려주고 싶다.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진정한 관계에 대해 꾸준히 힘을 실어주었고, 의문이 생길 때마다 책 밖으로 걸어 나와 내게 말을 건네주었다. 나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고 일, 삶에 대한 긍정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코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런 것들과 별개로 개인적인 노력의 차원에서 들여다본다면 새로운 관점을 언급하고 싶다. 방향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눈앞이 아닌 조금 더 먼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방법을 배웠다. 죽음과 삶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과가 아닌 과정이 나의 몫이라는 것도 힘들게 터득했다. 나를 억누르고 있는 것들과 정면에서 마주하는 시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어디선가 날아온 잡음에 온 마음이 뺏기지 않도록 배꼽에 힘을 주는 법도 익혔다. 공원을 걷고, 운동을 하며 현실이었지만 때로는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나'와 '내 삶 배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고백하면 될 것 같다. 그런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방향성이라고 해도 좋다. 이제는 허공이 아닌 땅 위에 두 발을 온전히 내려놓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위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없으면 세상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내가 귀했고, 나의 삶이 귀하게 느껴졌다. 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럽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결말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결정할 것은 내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 생겨나는지는 내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었다.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온 것을 온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픈 상상, 말도 안 되는 것을 연결하여 나를 괴롭힐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산투르를 연주하는 것과 코스모스의 질서가 만들어내는 것이 동일한 리듬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할까.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삶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 조금 감이 오는 느낌이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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