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중학생이 된 둘째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중학교 1학년일 때 영어와 수학, 두 군데를 다니면 너무 힘들다. 1학년 때 놀아야 하는데, 학원을 두 군데 가게 되면 놀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만 하고 싶다"
'싶다'가 아니라 '싶어요'라는 동사를 활용했지만, 내게는 '싶다'라고 들렸다. 조심스럽게 말했다고 하지만 내게는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렸다. 적당한 선행학습을 통해 학습 용량을 키워야 하는 시기이지만, 공부 습관을 잡아야 하는 것도 분명했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 1학년 때 놀지 또 언제 놀 수 있겠어'
그래서 아들과 합의를 했다.
"수학 학원에만 다니는 걸로 하자. 대신 영어를 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하루에 10분만 엄마와 함께 영어 단어 외우기 하자. 어때? 엄마도 같이 외울게"
어제까지 해서 '하루 10분 영어 단어 외우기'를 실천한 숫자가 295가 되었다. 처음에는 100이 목표였다. 100일만 채우자. 그리고 100일을 넘기던 날 둘째에게 제안했다. 이왕 한 거 좀 더 가보면 어떨까? 200이라는 목표가 세워지는 순간이었고, 200일을 달성하기 며칠 전, 우리는 최종 목적지를 300으로 정했다. 중간에 사정이 생겨 단어 외우기를 할 수 없을 때는 과감하게 쉬었다. 둘째의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며칠을 쉬었다.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 밀접 접촉자가 되어 자가격리를 해야 되었을 때는 열흘 넘게 쉬었다.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없어 슬프다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멈추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똑같은 책을 세 바퀴 정도 돌렸다. 완벽하게 암기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 단어를 보고 어떻게든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아는 단어도 제법 많아졌다. 지금으로서는 영어 단어가 둘째의 머릿속에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있다가 적재적소에서 힘을 발휘해 내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아마 그 이전일 것 같다. 막냇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모두 일을 다니셨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공식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다가 막냇동생의 영어 단어 외우기를 지원하고 나섰다. 부모님을 위해서든, 동생을 위해서든, 백수처럼 보이는 나를 위해서든 행동이 필요해 보였다. 영어 단어 외우기. 말이 지원이었지 실은 거의 협박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덩치도 나보다 훨씬 컸던 동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신기하다. 겨우 네 살밖에 많지 않은 누나가 영어 단어를 외우지 않았다고 혼을 내고, 손바닥을 30cm 자로 몇 대 때리는 것을 가만히 맞고 있었으니. 늦게 귀가한 엄마와 아빠는 내가 동생의 손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는 걱정에 잠겼다가도 바쁜 일상에 지친 몸의 노곤함은 딸을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기억에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일을 언젠가 동생이 술자리에서 꺼냈었다.
"그때 누나 덕분에, 누나가 나 때리면서 영어 단어 외우게 해서 나 영어 점수 올랐어. 그때 고마웠어"
어쩌다 보니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과 관련하여 몇 개의 추억이 가지게 되었다. 돕는다는 거창한 것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둘째와 하루 10분 영어 단어 외우기를 한 것도 잊어버릴 것이다. 막냇동생과의 영어 단어 외우기를 잊고 살았던 것처럼. 잊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별로 아쉽거나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 상황에 내가 한 어떤 행동이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막냇동생의 일이든, 둘째에게든. 정말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나였다면, 내 공부도 제법 열심히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를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성적은 기억도 나지 않고, 전문대학도 어렵게 들어가서는 거기서도 학사경고를 맞아 나중에는 휴학까지 했었으니. 야무지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세운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은 이십 대를 넘어서부터였다. '이래서는 안 되는구나'를 깨달은 시기가 막냇동생의 영어 단어 외우기와 맞물리지 않았을까 싶다. 빙빙 돌았던 젊은 날의 경험 덕분에 덧없이 빙빙 헤매는 횟수가 줄어든 요즘이다. 그 덕분에 둘째와의 영어 단어 외우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본래부터 계획적이고, 읽기가 취미인 사람은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모험을 감당했고, 모험에서 얻은 결과를 내 몫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오늘도 항해는 여전하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세 번째 미션이 찾아오든. 혹은 다른 방식의 제안서가 날아오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맞이해볼 계획이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