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매니큐어를 바르던 날

by 윤슬작가

유난히 손톱이 반짝이는 사람이 있었다. 루비 빛깔의 반지를 껴고 있다는 것도, 하얀 손가락이 눈에 띄었던 것도 명확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자꾸 시선이 갔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양손에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 수시로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7월의 탄생석이 루비라는 것을 알고 난 뒤 한동안 루비 큐빅을 넣은 반지, 목걸이를 지니고 다녔다. 탄생석이 지닌 억겁의 시간이 내게 모종의 힘을 발휘해 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몸에 어떤 것을 걸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여간 이런저런 눈치만 살피다가 '나와 맞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함께 서랍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까닭에 루비 큐빅이 박힌 반지는 시선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반짝거리는 투명한 매니큐어는 달랐다. 자꾸만 눈길이 갔다.


'왜 이러지?'

'왜 이렇지?'

'저게 뭐라고?'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이유를 알아내고는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즈음 손톱을 깎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손톱을 깎으면서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야지'라고 계속 생각하던 중이었다. 손톱을 깎은 후 바로 매니큐어를 바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적당한 시기를 놓쳤고, 좋은 날을 기다리다가 며칠을 넘긴 터였다. 그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마음속으로 계속 '해야지, 해야지'하는 일이다 보니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 않았나 싶다. 고상해 보이거나 예뻐 보였다기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마음의 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상황을 깨달은 후, 그날 저녁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화장대로 달려가 투명 매니큐어를 찾았다. 가볍게 두 번 터치하듯 열 손가락을 정성껏 발랐다. 조금 웃긴 것은 그다음이었다. 미뤘던 일을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새삼스럽게 나의 손가락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과 루비 큐빅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사람은 그런 것 같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신경 쓰고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어떤 연관성도 없는 엉뚱한 것을 기억해 내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이렇게든 저렇게든 나는 오늘도 나에 대해 대해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든, 나를 이해하는 일이든 하나의 배움이 있었다. 이번 경험 역시 자산 목록에 올려도 될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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