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했으니

by 윤슬작가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했으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다. -긴긴밤




나에게도 '우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지금 함께 긴긴밤을 보내는 남편과 아이들이 내겐 '우리'이고, 함께 긴긴밤을 보낸 적이 있는 부모님과 형제가 '우리'이다. 또한 긴긴밤은 아니지만, 긴긴낮을 함께 보낸 친구도 나에게는 '우리'이고, 짬짬이 만나 밤과 낮의 이야기를 길게 주고받은 이들도 내겐 '우리'이다. 우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책, 「긴긴밤」을 소개한다.


「긴긴밤」의 주인공 나(펭귄)는 이름이 없다. 다만 아빠는 많다. 펭귄 치코, 윔보, 그리고 코뿔소 노든의 나의 아빠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혼자 지내고 있다. 바다에서 생활하며, 나의 냄새를 맡고, 나의 걸음걸이를 알아볼 수 있는 코뿔소 노든이 찾아와줄 거라고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오면 코와 부리를 맞대고 우리만의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긴긴밤」의 결말이다. 「긴긴밤」은 페이지가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금세 책장을 덮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 바위 코뿔소와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노든에게 위험이 다가왔을 때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주변에 똥을 싸는 어린 펭귄, 이제 자신을 두고 바다로 향해 떠나라는 노든, 그동안 함께 보내온 긴긴밤을 통해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대, 우정, 용기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코끼리 유치원에서 태어난 노든, 훌륭한 코뿔소가 되기로 결심한 노든, 사랑하는 가족을 이룬 노든, 인간들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게 된 노든, 한 번도 동물원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친구 앙가부, 앙가부와의 탈출 시도,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앙가부, 전쟁, 동물원을 빠져나온 펭귄 치쿠와 앙가부 그리고 어린 펭귄(당시에는 알),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치쿠, 치쿠의 죽음, 치쿠와의 약속을 지키고 난 이후 인간에게 복수할 결심을 하고 있는 노든, 바다를 찾아 떠나는 길, 늙고 병든 노든, 노든을 보살피는 착한 인간들, 착해 보이는 인간 곁에 노든을 두고 바다로 떠나는 어린 펭귄.


"나는 내가 본 적도 없는 치쿠와 윔보의 몫까지 살기 위해 살아 냈다기보다 나 스스로가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 냈다. 그들의 몫까지 산다는 노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그 후로도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라는 어린 펭귄의 메시지에 울림이 가득하다. 고통, 슬픔, 분노로 가득할 것 같지만 사랑, 기쁨,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제법 근사하게 들려온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닌 사람은 없다. 눈이 보이지 않았던 코끼리 옆에 눈이 잘 보이는 코끼리가 함께 걸어준 것처럼, 우리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어떤 날에는 마음이, 어떤 날에는 어깨가, 또 어떤 날에는 손이 필요하다. 내어줄 수 있을 때 기꺼이 내어줄 수 있기를, 필요할 때 기꺼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함께 힘을 모아 삶이 던져주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 그것이 곧 연대이며, 저자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이전 10화헝가리 소설 / 도어, 에메렌츠의 세계로 초대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