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소설 / 도어, 에메렌츠의 세계로 초대받다

by 윤슬작가

서보 머그더는 우리에게 아직 친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만큼은 못 되는가 싶었다. 어설픈 예단이었다. 여름과 가을을 보내며 나는 이 소설을 천천히 세 번 읽었다. 일생 동안 육체노동을 해온 노년의 가사도우미와 그보다 스무 살 어린 중년 작가, 두 여성이 교류한 20년 동안의 우정과 파열의 기록, 4백 쪽이 안 되는 소설을 4천 쪽짜리 대하소설인 양 읽어야 했다. 4천 쪽만큼의 감정이 4백 쪽에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 추천의 글(신형철 / 문학평론가)



독서모임에서 지정도서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 의문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우선 서보 머그더가 헝가리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라고 하지만, 내게 헝가리는 낯선 나라였고, 낯선 세계였다. 거기에 많은 분량의 내용과 생각, 감정을 단단하게 압축하여 페이지마다 빠짐없이 서술하듯 펼쳐놓았는데, 결코 읽기 쉬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용이 재미없다거나 지루해서라기보다 쉽게 지나치는 것이 어려웠다. 곱씹고, 또 곱씹어 음미해야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전개 방식이라 읽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온 경험이 여러 번이다. 내용 이해를 위해서라기보다 저자의 스타일과 친근해질 필요가 있었고, 수많은 감정과 직, 간접적인 사실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THE DOOR, 도어. 이 책의 주인공은 에메렌츠이다. 아니, 직접 글을 이끌어가고 서술하는 사람은 '나'이다. '나'는 작가이며, 아직 명예로운 지위를 가졌거나 화려한 수상 경력을 얻지는 못했다. 적당히 인텔리였고, 적당히 아는 게 많았고, 적당히 사회적이었다. 반면 나의 남편은 굉장히 호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유심하게 관찰한 결과를 '나'에게 들려주어,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한다.


우리의 주인공 에메렌츠, 그녀는 강하다. 세계관이 뚜렷하고, 인생관도 명확하다. 육체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철의 여인이다. 눈이 오면 동네 11곳의 제설작업을 거뜬하게 해내는, 주인에 의해 선택받는 하녀가 아니라, 주인에 대한 의견이나 평판,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그 집에서 일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한다. 주도권은 주인이 아니라 에메렌츠에게 있다. 그런 에메렌츠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와 남편을 선택하고, 덕분에 거의 20년 가까이 함께 생활하게 된다. 에메렌츠는 특별한 점도 많은데 특히 불쌍한 것들, 개나 고양이에 대해 사랑을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가끔은 개나 고양이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모두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과격한 방식으로 삶을 가르치기도 했다. 비올라가 그랬고, 아홉 마리의 고양이가 그랬다.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에메렌츠에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작은 TV를 선물한다. 하지만 선물의 의도와 상관없이 에메렌츠는 밤새 제설작업을 했고, 급기야 폐렴에 걸리게 되고 집밖에 나오지 않게 된다. 본격적으로 갈등 단계에 접어든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마을에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 에메렌츠는 누구도 자신의 집 안으로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친근하게 지내는 이웃이라고 해도, 조카라도 해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도, 절대 열리지 않는 문, DOOR였다. 그런데 이 DOOR를 넘어 자신의 집안으로 초대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나'였다. 에메렌츠가 자신의 세상을 보여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인물인 셈이다. 에메렌츠는 '나'는 자신을 잘 안다고, 또 그녀만큼은 믿어도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설명과 해명을 하고자 한다. 이 책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신에게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깨어 있거나 잠들었던 그 모든 때를 관찰하고 그 모든 것의 증인이 되는 혼령들에게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용감하게 살았으며 죽음 또한 이렇게 거짓 없이 용감하게 맞이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 - P.10


소개된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나'가 에메렌츠와 있었던 일을 알려주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나'가 에메렌츠를 죽게 만든 것에 대한 고해성사에 가깝다. 어떤 과정으로 그 일이 생겨났으며, 어떤 말과 행동이 오갔으며,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즉 결말을 알고 읽어나가는 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페이지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 했을까. 에메렌츠는 왜 이런 말을 할까. '나'는 왜 그렇게 이해했을까, 에메렌츠에게 비올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에메렌츠는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열어줬을까, 과연 나라면 문을 열어주었을까.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처럼 수많은 질문을 계속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마음속으로 여러 질문을 가진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과 잘 안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에메렌츠에게 묻는 장면이 있다. "만약 내가 그런 입장에 놓였다면, 그대로 두었을까요?"라고. 에메렌츠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라고. 존엄, 자존에 관해, 허위와 배신, 용서와 수치심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정말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처럼, 4천 쪽에 달하는 감정과 생각, 견해를 4백 쪽으로 담아낸 저자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건네주고 싶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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