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의 가족과 교육 이야기

by 윤슬작가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이다. 모르몬교인 아버지, 아버지를 거스르지 않는 엄마, 폭력적인 숀 오빠, 대학을 언급하며 가장 먼저 집을 떠난 타일러 오빠, 사고로 다친 루크 오빠, 타일러의 뒤를 이어 배움을 위해 집을 떠난 리처드 오빠, 그리고 안전한 교육을 선택한 오드리 언니, 그리고 경기 침체로 결국 가족 곁으로 돌아온 토니 오빠까지. 모두 타라의 가족이다. 하지만 어떤 가족은 타라의 가족으로 남아있고, 어떤 가족은 얼굴도 보지 않고 있다.

타라의 성과는 놀랍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본 적이 없던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10년 만에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었다는 것은 이슈가 될 만한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박사 학위보다 더 존경스러운 것은 그녀가 온몸으로 받아낸 성과물이다.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던 아버지의 세계는 외부 세계와 교차점을 이루는 순간 충돌을 만들어낸다. 타라는 혼란에 빠지고, 자신을 의심하며, 그때마다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떠올린다.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던 시절의 평화로움과 안전함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그 선택이 옳았는지, 타라의 고통이 여과 없이 내게 전달되어 읽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그랬다면 연민을 발휘하며 우아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라는 현재였고, 현실이었다.

타라는 신체적인 위협에 놓이기는 했겠지만 정신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고, 숀 오빠의 방식을 좋은 의도로 해석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가족도 잃지 않고, 어쩌면 안전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전하는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표현대로 '항복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녀는 안전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대가를 각오하고, 가족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면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족의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직한 기록을 신뢰하기로 결정한다. 덕분에 그녀는 정신적 안전은 포기해야 했다. 매 순간 그녀는 아버지의 이론과 맞서 싸워야 했고, 자신의 의견을 깨뜨려야 했고,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하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다. 타라에게 10년은 전쟁과 평화, 그 자체였다.

타라는 자신을 거부한 집으로 매년 순례 여행을 가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동정하고, 엄마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믿는 아버지와 엄마는 타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타라는 교육을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감이 가고도 남음이었다. <배움의 발견>을 경험하는 내내 배신을 마주해야 했던 타라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본다. <배움의 발견>을 통해 삶을 변신시키고, 탈바꿈을 이뤄낸 치열함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하고 싶다. 허위를 밝혀내어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10년이라는 시간, 10년간의 배움은 타라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변화만 이뤄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평화로움도 함께 선물해 준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놓인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버지와 엄마를 되찾는 것이라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둬야 할 것 같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뜻으로 살기를 원하고, 엄마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한, 타라의 바람은 정말 바람으로 끝날 수도 있다. 타라가 타라의 삶을 선택한 것처럼, 아버지와 엄마 또한 그 삶을 선택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가족이란 정말 무엇일까, 타라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가 아닐까 싶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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