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by 윤슬작가

가난한 신분,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사람이 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 직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다. 이후 8년이라는 유형 생활을 했고, 후유증으로 간질병에 걸려 평생을 시달렸다. 그는 도박꾼이었으며, 애써 모은 돈을 생활비가 아닌 도박에 갖다 바치는 어리석음을 소유한 사람이기도 했다.


극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완성해낸 사람이 있다. 그는 열정이 향하는 곳에 기꺼이 몸을 밀어 넣었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유심히 관찰하여 글로 옮겼다. 자신의 아픔, 콤플렉스, 병을 작품 속에서 자유자재로 요리해 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운명이 자신에게 준 것 위에서 자신의 것을 일으켜 세우더니 급기야 자신을 넘어섰다.


그는 바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이다.


그의 대표작 <죄와 벌>은 라스콜리니코프라는 한 청년이 자신의 심오한 사상에 근거하여 전당포 노인과 그의 이복 여동생을 도끼로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가 범행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거라고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검증, 신뢰할만한 근거와 신호를 확보하는 일뿐이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는 초인이 되어 '살인'이라는 행위를 범한다. 하지만 그의 계획에 문제가 생긴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사람을 한 명 더 죽이게 된다.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실행한 일에 정당하지 않은 일이 생겨난 셈이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정당성에 흠집이 생기는, 그러니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책의 결말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시베리아로 유배생활을 떠난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위한 판정, 법정에 서는 시간에 이르기까지는 그는 자신의 죄를 완벽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어긋난 것에 대한 억울함과 계획이 실패한 이유, 초인이 되지 못한 답답함에 갈등한다. 유일하게 쏘냐에게 자신의 감정 변화를 여과 없이 드러낼 뿐이다. 마치 그녀와 자신의 사상을 대립시켜 위로를 받으면서 그녀에게서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이중성을 보이면서 말이다. <죄와 벌>은 죄를 지은 이유, 범행의 계기가 된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과 감정에 절반 이상의 지면을 할애한다. 그에 비하면 재판에 서고 시베리아에서의 유배생활은 극히 작은 분량이다. 그러니까 죄를 짓고, 벌을 받는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기 보다 무엇이 죄인지, 진짜 벌은 무엇인지 독자에게 계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 생겨나야 했다(p.498)"


라스콜리니코프가 변증법의 결말이 아닌 삶, 그 자체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 것으로 <죄와 벌>은 마무리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수시로 몸이 긴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심경의 변화, 주변 상황에 대한 자세한 장면과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몰입감을 선사하여 어느 순간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쏘냐, 어떤 경우에는 포르피리가 되기도 했다. 생존이 문제였다가, 사랑의 문제였다가, 우정의 문제가 되기도 했다.


표드르 도스도예프스키는 심판자를 자처하지 않았다. 약 1,000쪽에 이르는 페이지에서 그는 심판을 우리에게 맡겼으며 동시에 심판의 근거를 제시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그의 진짜 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구원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과연 그의 삶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삶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얘기한 포르피리의 말이 책을 덮고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른 것을 알아차린 포르피리. 라스콜리니코프의 변증법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를 구원의 문턱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 모습에서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쏘냐의 헌신적인 사랑만으나 포르피리의 믿음과 배려를 높게 평가해 주고 싶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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