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저지대에게 안부를 묻다

by 윤슬작가

줌파 라히리는 친절하다. 자신의 언어를 우리의 언어로 바꿔내는 정확한 온도를 알고 있다. 그녀는 능숙하다. 단 세 사람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 명이 아닌, 세 개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일에 허술함이 없었다.우다얀이 되기도 하고, 수바시가 되기도 하고, 가우리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읽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몰입감은 물론 탁월함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라히리는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고 등장인물을 다룬다"라고 소개한 뉴욕타임스의 북 리뷰는 과장이 아니었다.


저지대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수바시, 우다얀,가우리.

인도의 전쟁, 독립, 과도기라는 시대와 맞물려 세 명의 역사는 인도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적극적이며 모험심이 강한 우다얀은 인도와 호흡을 같이 한다. 아파하고, 투쟁하고, 자신의 역사를 인도의 역사 속으로 흘려보낸다. 수바시는 인도의 비극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결정한다. 인도의 역사가 아닌 개인의 역사를 추구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역사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가우리는 우다얀을 거쳐 수바시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우다얀과의 사랑이 수바시에게 흘러가는 것을 관조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우다얀이 아닌, 수바시가 아닌, 가우리가 되는 선택을 한다.


"우리를 위해 그러신 거야.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고 계시니까(p.45)"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게 돼(p.53)"

"그는 우다얀을 따라 집회에 가지 않았으며, 우다얀도 그에게 같이 가자고 요청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둘은 이미 갈라진 것이었다(p.61)"


인도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는 문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쌍둥이처럼 붙어지낸 수바시와 우다얀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졌으나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그들의 선택, 그들이 선택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순간에는 안타까움이, 또 어떤 장면에서는 슬픔이 밀려들었다. 그들의 서사가 아닌, 우리의 서사라는 감정이입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가우리가 끝끝내 이야기하지 않았던, 우다얀과의 비밀이 책 마지막에 밝혀지는 순간 "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필력, 전개, 스토리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치, 사회적인 소설 또는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찾기 어려웠으며 매력적인 주인공들로 인해 수시로 그들과 하나 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비춰본다고 얘기한 옮긴이의 생각에 격한 공감을 표현하고 싶다.


"힌두 철학에서는 신 안에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신은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지만, 시간은 죽음의 신으로 인격화되었다(p.241)"


"과거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있다"라는 뒤표지가 강렬하다. 과거 위에 오늘이 있고, 그런 오늘이 내일은 과거로 불릴 것이다. 누구에게나 저지대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고여있는 과거, 그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 어쩌면 저지대인지도 모르겠다. 만나서 통합되기도 하고, 물과 기름처럼 상관없는 것처럼 나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누구에게나 저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저지대는 안녕한지, 나의 저지대에는 어떤 것이 고여있는지 안부를 물어오는 책이었다. 저지대, 속도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 누군가의 서사로부터 나의 서사를 발견하고 사람, 나의 저지대에는 어떤 것이 고여있는지 궁금해진 사람, 그런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고 싶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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