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연민에는 무고함이 숨어 있다

by 윤슬작가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뛰어난 소설가인 수전 선택이 <타인의 고통>이라는 제목으로 무뎌진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라는 수식어와 달리, 책 속에서 만나는 그녀는 날카롭고 예리했다. 연출된 이미지와 무감각해진 이성을 비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읽는 내내 가슴이 뜨끔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보냈다는 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했던 마음에 경고를 보내는 것은 물론, 연출된 이미지 뒤로 숨어버린 무감각해진 감수성에 대한 지적이 예사롭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은 서문에 밝힌 것처럼,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 보다 전쟁을 다룬 책이다. 전쟁의 본질, 그들의 전쟁, 그들의 고통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수전 선택의 시선은 원하는 지점은 그곳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우리(책을 읽는 내내, 우리라는 정의조차 불분명한 느낌이었다)의 연민과 연민의 한계를 겨냥하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연민 밑바닥에 숨겨진, 어디까지 진실하게 생각해 봤는지에 대한 대답이 그녀가 원하는 진짜 메시지이다.

연출된 것인지도 모른 채 진실로 받아들인 사진의 발견은 충격적이었다. 사진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고, 나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수시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사진 속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음은 물론, 나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페이지를 넘겼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불편한 감정이 생겨나고, 단 한 번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은 그동안의 태도에 대해 부끄러움이 찾아들었지만, 그런 발견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나는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얘기이며, 나와 그들은 완벽하게 다르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밀면서 말이다.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가 사라예보 전쟁에 대한 참혹함을 전하는 사진전에 자신이 소말리아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자랑스럽게 곁들였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완벽하게 빗나간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을 자신의 고통과 함께 소개한 것에 대해 불쾌해한다. 그 상황에서 폴 로우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수전 선택이 짧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설명한다. 그 문장이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 이번 <타인의 고통>에서 얻은 최대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과 견주는 것에 참지 못하는 법이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읽을 수 있었고, 견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과 우리. 그들과 나를 명확하게 구분 지었고, 그들의 고통이지 나의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에 평정심에 기대어 판단이라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나를 찾아왔다. 무지에 대한 깨달음, 불의가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한 인식의 발견, 곰곰이 생각하기보다 그냥 보이는 것을 믿었던 무책임한 방식까지 기존의 질서 체계에 여러 견해가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덕분에 앞으로 '보는 법'이 조금 더 세심해질 것 같다.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것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보다 다르게 반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 같다. 동시에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하기에 앞서 내가 곰곰이 따져봐야 할 의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이해한다는 것, 그것도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감히 '이해한다'라는 말을 뱉을 수 있을까. 이해라는 단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p.154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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