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by 윤슬작가

"과연 나는 어떤 땅 위에 서 있는 걸까?"

"내가 니들 아버지란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더라. 판수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뜻을 나누려는 걸까?"


나는 매번 남들보다 늦게 감동받고, 감동에 빠지는 사람이다. 영화 <말모이>도 그랬다. 나에게 큰 선물이라도 하듯 넷플릭스를 켰고, <말모이>를 보게 되었다.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점점 사라져가던 우리 말을 모아 '말 사전'을 만들려고 노력한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 조선어학회 대표이자 책방 주인으로 나오는 류정환은 판수를 향해, 조선인을 향해, 우리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말이 곧 정신이고, 글이 곧 생명이다"


까막눈에 아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방을 훔치려고 했던 판수는 감옥에서 도움을 주었던 인연 덕분에 책방에 취직을 하여 말모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단 조건이 붙었다. 까막눈을 졸업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돈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던 판수가 ㄱ, ㄴ, ㄷ,... 가, 나, 다... 하나씩 한글을 깨우치고, 글자를 읽기 시작하는 장면이 유머러스하게 연출되었는데, 그 모습이 웃기지 않았다. 결국 판수는 까막눈을 졸업하고 한글을 읽게 된다. 즉 새로운 눈을 갖게되고, 새로운 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판수의 노력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을 열게 만드는 열쇠가 되고, 그의 바람처럼 남매에게 덜 미안한 아버지로 남게 된다.


역사와 관련된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땅 위에 서 있는 걸까, 과연 내가 누리는 혜택은 온당한 것인가.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의 성공 뒤에서 수천 명의 흑인이 있다고, 그들 덕분에 자신이 여기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던 것 같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우리는 이전 세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부모는 그런 것 같다.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누구도 미안한 부모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판수는 남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번듯한 모습,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판수의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말모이를 완성하고 나면 내가 니들 아버지인 게 덜 미안할 것 같더라'. 판수를 보며 나의 모습을,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나에게 자랑이 되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자랑이 되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모은다. 그들과 말을 나누고, 글을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내가 남기려고 하는 글에는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는지 자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흔적을 엮어 유일한 증인이라도 된 것처럼 말과 글을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과 글에 대해 조금 더 엄중한 주의가 필요해 보였고, 동시에 사명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이전 세대에 대한 빚을 조금이라고 갚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네 놈의 한 발자국이 더 낫지 않겠어"

- 영화 <말모이> 중에서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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