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앞으로 5년, 혹은 10년 후쯤에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그날이 생각보다 훨씬 당겨졌다.
며칠 전 과외를 마친 첫째와 함께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블로그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잠시 블로그를 뒤적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나의 블로그가 궁금하다고 했다. 나의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는지, 어떤 에피소드를 글에 옮겨놓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동안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여행지의 흔적을 남기거나 아이와의 에피소드를 글에 올려오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라 많이 올리지는 않았었다. 거기에 혹시 아이들이 나중에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많지 않을 거라고 얘기해 주었지만, 그 소리를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벌써 손가락을 밀어올리며 블로그를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이때, 기억나! 그때..."
"이 사진에는 설명이 좀 더 필요했어. 어려운 문제 풀고 있었다고 설명해 줬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쪼그맣지?"
"여기 밑에 내려갔을 때 커다란 공간이 있었잖아..."
"음... 동생 귀여운데..."
"여기서 엄마 넘어졌었잖아?... 근데 진짜 웃겼어!"
"또 가고 싶어. 여기!"
"물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재밌게 놀았지!"
"이게 언니라고? 설마?"
완전 신이 난 목소리다. 잊고 지내온 시간, 사라진 추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시간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블로그의 글이 2,300개를 넘겼고, 많지 않다고 해도 일상 관련 글이 제법 되는 400개가 넘어서인지 추억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었다. 가끔 제목을 훑으면서 "음, 이건 나하고 상관없는 글 같고..." 하면서 넘기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언젠가는 그 글도 읽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혼자 상상하면서 곁을 지켰다.
언젠가 아이가 블로그를 하게 되고, 나의 블로그를 읽게 될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그날이 빨리 찾아온 것 같다. 게임과 유튜브, 최케빈에 빠진 둘째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이 비슷한 첫째는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블로그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묘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추억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고, 아이가 아니라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했다. 기억이 나서 "엄마도 네 블로그 한번 들어가 볼까?"라고 물었더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음... 이거... 괜찮을 것 같은데.... 안되겠네... 말이 거친데..."
"음... 이것도... 말이..."
"요건 되겠다"
덕분에 검문을 통과한 한편의 글을 읽을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과 그때그때의 감정을 글로 옮겨놓은 포스팅이었는데, 중간에 잊지 않고 직접 찍은 사진과 재밌는 사진도 곁들여 나름 모양새를 갖춘 모습이었다. 물론 중간에 '헉'하는 단어가 몇 개 보이긴 했지만, '뭐,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아마 이런 단어 때문에 자체적으로 검문이 이뤄지지 않았나 싶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