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록하기'를 즐기고 있다. 노트에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감사 노트에 감사한 것을 적기도 하고, 컴퓨터에 일기를 쓰기도 한다. 얼마 전 2019년 자료를 찾다가 컴퓨에 저장된 2019년 일기장을 펼치게 되었다. 2019년, 첫째는 중학교 2학년, 둘째가 5학년이었다. 순간적으로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했던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기, 흔적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흔적은 대부분 과거이고, 이미 흘러간 시간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날에는 마냥 궁금해진다.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 마치 그 시간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호기심 차오른다.
2019년 겨울, 첫째와 둘이 조금 빠듯한 일정으로 2박 3일 제주여행을 다녀왔을 때의 흔적이었다. 일기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딸과 함께 둘만 제주도를 다녀온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잊고 있었던 제주의 추억이 소환되어 왔다. 성산 일출봉, 우도, 미로공원, 함덕의 유명한 카페까지, 둘이 걷고, 먹고, 사진 찍고, 얘기 나누었던 시간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몇 줄을 더 읽어 내려가는 순간, 그즈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을 마주하고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다녀왔는지의 기록을 몇 줄 더 읽어 내려갔을 때였다. 제주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적혀있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아예 잊고 있었던 것이라) 당황스러웠다.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즈음, 첫째는 자신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얼마나 속상한지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도 알지 못한다고 울면서 얘기했던 모양이다. 그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떻게라도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고백이 종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가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 모양이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둘이 함께 떠나보자고, 이번에는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정해보라고, 무조건 오케이 하겠다고 말한 기억이. 내가 티켓을 예매할 동안 아이는 기뻐하며 며칠 동안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난 것이 제주여행이었다. 아침은 숙소에서 토스트를 먹고, 점심은 맛집을 찾아다녔다. 우도에서 성게비빔밥과 해물라면을 먹고, 제주도로 나와 미로공원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나도 좋아하고 아이도 좋아하는 성산 일출봉에 오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루만 더 있다가 오고 싶다는 아이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일기를 덮는데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지금 첫째를 보면 '그런 적이 있었던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부분이 유쾌하고 당당하다. 반면 그해 무던하고 순했던 초등학교 5학년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전날 밤에는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진다면서 연일 미소를 날리다가 다음날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말 내내 제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인상파로 돌변한다. 말도 짧아지고, 어떤 일로 화가 난 것 같은데, 이유를 알아차리는 일이 쉽지 않다. 중학교 2학년,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게 정해져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겪게 되는 감정 노선이 있는 것 같다. 첫째를 봐도 그렇고, 둘째를 봐도 그렇다. 무언가 불확실하고, 뭔가가 부당하고, 뭐라 할 수 없는 속상함이 인과관계없이 드나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둘째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새롭게 익히는 방식으로 성장할 거라고 기다려볼 생각이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새롭게 익히는 일에 대해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될 것이다. 완전하게는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도는 아는 엄마가 되고 싶으니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