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와 다리미, 그리고 엄마

by 윤슬작가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정도 된 일,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청바지에 돈을 넣은 줄 모르고 세탁 바구니에 넣은 모양이었다. 출근 준비를 끝낸 후 서둘러 바구니에 청바지를 밀어 넣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 저녁 퇴근을 했는데 뜻밖의 풍경이 벌어져있었다. 지폐 넉 장이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였던 모양이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다리미 스위치를 끄면서 속삭였다.


"됐다!"


"엄마, 나 왔어"

아까부터 내가 서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 모르긴 몰라도 단단히 혼이 날 것 같았다. 조심성이 없는 것에 대해서, 돈을 함부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청바지 넣기 전에 뭐가 들어있지는 않은지 살폈어야지!"

"살폈지! 그런데. 없었어. 어디서 나왔지?"

"어디서 나오기는. 앞주머니에 있던데?"

"돈이 돌돌 말려서 나왔어. 그나마 찢어진 게 아니라 다행인 줄 알아!"


통돌이 세탁기가 위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안전하게 돌돌 동그랗게 나왔다고 하니 장난이 발동했다.

"다행이네. 돌돌 말렸으면 다리미로 펴면 끝나잖아? 헤헤"

그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돈을 소중하게 다뤄야지. 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한테 돈이 찾아오는 거야!"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그날 한참 동안, 아니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계속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돈을 귀하게 여기지 않느냐는 둥, 한두 번이 아니라는 둥, 꼼꼼하지 않다는 둥.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인지, 어떤 전래동화에서 나온 결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나름 돈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부자가 되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돈에 관해서만큼은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돈을 꼬깃꼬깃 접지 말고 펼쳐서 지갑에 보관해라'

'돈 무서운 줄 알아라'

'돈 귀하게 다뤄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이 되살아난 것은 며칠 전 옷 수선 가게에 들렀을 때였다. 남편의 봄 코트가 너무 길어 수선을 맡겨 두었는데 제법 시간이 흐른 후였다. 깜빡하고 늦게 찾으러 왔다는 얘기에 주인아저씨께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오셨다.

"요즘 한참 입을 때인데..."

"그렇죠? 제가 깜빡해서..."


가지런하게 접어주신 외투를 받아 봉투에 넣으면서 수선비를 건네드렸다. 종이가방에 코트를 넣은 후 잔돈을 받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아저씨께서 다리미로 지폐를 하나씩 다리고 계셨다. 그러니까 내게 줄 잔돈을 빳빳하게 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석장을 가지런히 모아 내게 건네주셨다.

"여기 있어요"

"아!"

"잘 입으세요"

"감사합니다... 지폐 다리는 모습,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에요"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서서 문을 나서는데, 순식간에 이십 년 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날의 거실 풍경이 떠오르고,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엄마처럼 돈을 귀하여 여기는 분이 또 계시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의 생일, 우리의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