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12시를 넘기는 순간, 우리는 둘러앉았다. 기억에는 전혀 없지만,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바로 둘째의 생일이었다. 아침 시간이 바쁘지 않은 예전이었다면, 7시 30분쯤 미역국을 먹고, 함께 케이크를 불면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하지만 아침을 시작하는 시각이 모두 달라졌고, 거기에 집에 귀가하는 시각까지 제각각이라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밤 12시에 모여 생일 케이크를 불어 주기로.
막 12시를 넘긴 시각, 세상 누구보다 가장 먼저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비록 큰 소리로 노래 부르지 못했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준비했고, 소원을 빌고, 씩씩하게 촛불을 껐다. 아빠는 용돈을, 엄마는 지갑을, 누나는 샤프를 선물해 주었다. 케익크를 떠먹으면서 과거의 생일에 대해 얘기나누었고, 생일날 어떻게 보냈는지에 관한 추억도 소환했다. 두 아이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15년 전, 18년 전 생일이 만들어진 순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여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생일이면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축하받을 수 있는 오늘에 대한 감사를 양쪽 할머니와 함께 나눈다고 전해주었다. 그러자 첫째가 얘기한다.
"나중에 전화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ㅎㅎ"
생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의 생일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고, 남편의 생일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고, 아이들의 생일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생일은 또 하나의 노래가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었고, 자연의 리듬에 변화가 생겨난 날이었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고, 인생에 관해 새로운 의미를 하나 더 발견한 날이었다. 그 중요한 날을 떠올리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이 밤중에 케이크를 먹어도 될까?"
"그럼, 먹어도 되지"
"더 먹고 싶은데... 참을까?"
"참지 말고, 먹어~~"
12시를 넘긴 시각, 식탁에 둘러앉아 작은 목소리로 아이스크림 케이크 앞에서 고민하는 네 사람이 있었다.
작은 목소리에 고민이 가득했지만, 바삐 움직이는 숟가락에서는 고민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from.기록디자이너 윤슬
생일은 달력에 있는 많은 숫자 중 하나가 아니었다. 생일은 ‘숫자’가 아니라 ‘문’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입구였다. 생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후, 나의 생일과 남편의 생일날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생일날 아침 또는 저녁에 울산이나 경주에 전화를 드린다. 그러고는 제법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진, 간절한 기다림이 결실을 본, 나와 남편에게 생일이 생긴 그날의 고마움을 표현한다.
“엄마, 나 낳는다고 고생 많았지? 아침에 미역국 챙겨 먹었어?”
“어머님, 아들 낳는다고 고생 많으셨죠? 미역국은 챙겨 드셨어요?”
생일, 여태껏 ‘내 생일’인 줄 알고 살아왔다. 아니었다. 내 생일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생일이기도 했고, 아버지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생일이 아니라 ‘우리의 생일’이었던 셈이다. 생일, 삶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곳에 어떻게 올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의 대답은 놀라움 그 자체다. 나의 생일에는 어떤 차별화된 전략이나 의도 같은 것은 없었다. 순전히 우연의 결과였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 나를 찾아왔고, 비슷한 기적이 계속된 덕분에 지금 여기에서 오늘과 인생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이쯤 되니 경이롭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다.
- 윤슬, 내가 좋아하는 동사들 중에서 / 4월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