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명의 일등이 나오잖아요

by 윤슬작가

이어령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천년을 만드는 엄마>이다. 2000년,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아이,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작품이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시처럼 쓰여 있어,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분량과 상관없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수시로 걸음을 멈춰야 했고,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다. 마치 거울 속에서 이어령 선생님이 반복적으로 묻는 것 같았다.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요?"

"아이들에게 어디를 향해 달려가라고 얘기하고 있나요?"

"어디에 아이들을 세워놓았나요?"


오래전에 읽은 그 책이 기억난 것은 며칠 전 글쓰기 수업에서였다. 마침 20분 글쓰기 훈련이 진행 중이었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강의실 맞은편에 중학교 건물이 있는데, 아이들이 원반던지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위치를 다르게 하여 원반던지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자리에 3,4명의 아이가 함께 서서 동시에 원반을 던지는데, 희한하게 모두 다른 방향이었다. 어떤 것은 높게, 또 어떤 것은 직선으로, 다른 것은 멀리, 어떤 것은 포물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그룹이 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모두 자유비행, 자유영혼이었다. 그때였지 싶다. 거의 동시에 오래전에 읽은 <천년을 만드는 엄마>의 '360명의 일등'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일등을 시키려면 같은 방향으로 뛰면 일등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나 동서남북을 뛰면 네 사람이 일등을 해요

360도 둥근 원으로 뛰면 어때요?

360명의 일등이 나오잖아요."


그랬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원반은 저마다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아이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해서 글쓰기 훈련 시간이 끝날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말 어떻게 저렇게 모두 다르게 날아갈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던 거울이 기억났다.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요?"

"아이들에게 어디를 향해 달려가라고 얘기하고 있나요?"

"어디에 아이들을 세워놓았나요?"


<천년을 만드는 엄마>,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내려갔던 육아서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다른 육아서와 달리 지금까지 살아남은 몇 권 되지 않은 책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내게는 소중하다. 제목부터 메시지까지 많은 부분이 생생하다. 콩나물시루에 물이 부어주면 계속 흘러내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콩나물이 자란다는 글도 생각나고, 산딸기를 먹는 아기곰을 뒤로하는 몸을 숨겼던 엄마 곰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운동장에서 뛰어오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너희도 360명의 일등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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